내 남자친구이자 예비 남편인 야옹이는 지금까지 내가 알아온 내향인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의 매력 상당 부분은 그가 가진 고유한 취향과 가치관의 세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의 수많은 취미 중 꽤 큰 무게를 지닌 부분은 바로 게임이다. 그는 PC와 닌텐도 스위치를 한대씩 갖고 있는데, PC로는 롤을 하고 스위치로는 어떤 굉장한 게임 한 타이틀을 천 시간 넘게 플레이했다. 그 게임의 이름은 "슈퍼로봇대전30(이하 슈로대)"이다. 그의 여가 시간이나 주말에 내가 전화를 걸어서 뭐하고 있었냐고 물으면 꽤 높은 확률로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슈로대 하고 있었어." 여가 시간 대부분을 침대에서 생활하는 그는 슈로대를 하면서 통화를 하기도 하고 슈로대를 하다가 잠들기도 한다. 그에게 슈로대란 게임을 넘어선 하나의 생활양식인 것 같다.
그런 야옹이가 오랫동안 갖고 싶어했던 피규어 장난감이 있다. 어쩌면 내가 그를 알기 전부터 계속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지도. 눈치 빠른 독자라면 내가 어떤 장난감을 얘기하려 하는지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 그의 위시리스트 상위에 올라있는 장난감이란 바로 로봇이다. 그것도 그가 그토록 애정하는 슈로대에 등장하는 로봇 기체이다. 그 로봇의 정식 명칭은 "반다이 메탈로봇혼 휴케바인"이라고 한다. 해외직구 상품이라 가격이 어느 정도는 유동적이지만 대략적으로 30만원 정도 하는 고급품이다. 나는 그의 니즈를 정말로 우연히 알게 되어, 무심결에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 하며 로봇의 정보를 재빨리 메모해두었다. 그러고는 깜짝선물을 못하는 성격답게 그에게 올해 생일 선물로 휴케바인을 사준다고 약속했고, 그는 기대에 부풀어 두어달 남은 자신의 36번째 생일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야옹이는 귀엽다. 제 나이대의 다른 30대 중반 남자들과 비교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걷어내고 오로지 그 자신이 가진 아우라만 봐도, 그는 확실히 귀여운 사람이다. 술과 여자에 둘러싸여 유흥을 즐기거나 중독적인 행위에 절어 사는 등의 극단적인 사례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명 "어른의 취미"로 여겨지는 상당수의 취미들이 내게는 여전히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 오디오, 카메라로 대표되는 고가의 취미생활과 더불어 입사원서의 취미란에 쓰기 제격인 러닝, 자전거, 등산 등의 아웃도어 액티비티까지 말이다. 돈 많이 벌고 훤칠하게 생긴 알파메일이 자기 명의의 집에 설치된 하이파이 오디오를 차곡차곡 업그레이드하든 말든, MBTI에서 E의 끝판을 달리는 알파메일이 러닝크루와 자전거 동호회에서 동시에 주류로 활동하든 말든, 내 옆에 지금까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남자는 하나밖에 없다. 자기 방 침대에 누워 스위치 조이콘을 까닥거리면서 머리로는 로봇 생일선물을 몽글몽글 꿈꾸는 야옹이.
내가 언젠가 통화를 하다가 미래에 살게 될 우리의 집에 어떤 걸 제일 먼저 들여놓고 싶냐고 물었을 때, 야옹이는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편안한 침대, 다른 하나는 스위치 게임 타이틀과 피규어들을 모셔둘 책장. 너무나도 야옹이다운 답변이었기에 나는 속으로만 감탄했는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걸 진짜로 눈앞에 실현시킬 날이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그날이 다가오면 난 제일 먼저 푹신한 침대와 예쁜 책장을 보러 다녀야지. 지금 그의 방 한 구석에 빽빽이 자리한 수십장의 게임 타이틀을 이고 지고, 그가 이미 갖고 있는 피규어와 내가 선물할 휴케바인을 이고 지고,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우리의 새 보금자리에 발을 들여놓아야지. 요즘 나는 야옹이가 아늑한 방 안에서 행복한 얼굴을 하고 로봇의 부품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가끔씩 상상해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어쩌면 그보다 더 행복해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