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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어캣 Feb 06. 2024

공짜 사랑은 없다는 안도감

나라는 사람의 교환가치

만날 사람이 없는 오후였다. 야옹이는 수술을 받고 주말 내내 병상에 누워 있었고, 나는 그를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을 친구와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마침 나가 놀기에 알맞은 시간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나 빼고는 모두가 데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문자를 해봐도 사람들은 감감무소식이었고 나는 홀로 무인도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의 은유적인 무인도가 로빈슨 크루소가 살던 시대의 무인도보다 더 지독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글을 쓰기에 알맞은 밀도의 외로움을 안고 워드프로세서의 하얀 창을 켰다. 그러나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는데다, 이토록 정제되지 않은 외로움의 덩어리를 글로 쏟아놓고 싶지가 않아서 금세 글쓰기를 그만두고 말았다. 다만 짧은 메모로 나의 생각을 적어놓기는 했다.

내가 한 생각에 스스로 의아해지는 순간이었다. “찾아올만한 메리트”라. 사람들이 나를 찾을만한 이점이라는 게 어디 있을까? 그들의 수많은 친구와 지인들 중에 굳이 나를 콕 집어서 연락을 하고 만나자고 할만한 매력이란 게.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쏙쏙 빼먹을만한 유형, 무형의 자산이라는 게 말이다. 나라는 사람을 냉정히 되돌아볼 때, 글쎄. 그런 건 없지 않을까.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줄을 설 만한 외모를 갖춘 것도 아니고, 업무 면에서 보고 배울만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개해줄 만한 인맥이 넓은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그들이 기댈만한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세상에 공짜 사랑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딱히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고 이기적인 세태도 아니며 원래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사람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라는 말은, 근엄하신 인문대학 교수님들이나 주워섬길만한 이상론에 불과하다. 다소 입맛이 쓴 일이기는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심지어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조차도 물리적, 심리적인 조건이 걸려 있는 마당이다.


그러나 나는 쓴 맛 나는 현실감을 목구멍 아래로 눌러 삼키는 동시에, 세상에 공짜 사랑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난데없는 안도감을 마음속에 피워올리는 것이다. 생각은 야옹이와 내가 아직 연인 사이가 아닐 때의 2년 전 대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일반론을 펼치면서 우리의 심리적 거점이 되는 특별한 사람, 통칭 “와이파이”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자신은 희생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상대방 쪽에서 일방적으로 기대기만 하는 기형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는 없다고. 그렇기에 그가 나의 와이파이인 것처럼 나 역시 그의 와이파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공짜 사랑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서도 나를 가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희한한 메커니즘을 통해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삼단논법이다.


이쯤에서 나는, 내가 야옹이에게 줄 수 있는 유형, 무형의 자산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뜯어본다.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여주고 편안한 곳에 잠시 누일 만큼은 되는 월급. 그다지 섹시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그의 입장에선 귀여워하고 예뻐할 만한 외모. 데이트 중 필연적으로 비게 되는 시간을 알차게 채우고 평소에도 해당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울 만큼 폭넓은 취미 영역. 그가 수도권 안의 어떤 지역 이름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자동으로 그곳의 맛집과 명소 지도가 머릿속으로 쫙 펼쳐지는 정보력. 관계의 주도권을 장악해서 갑질을 하려 들지 않는 올곧은 마음.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선 시시때때로 변하고 움직이지만 우리 관계에 대해서는 결코 변하지 않는 굳건한 애정. 이외에도 나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그는 체감하고 있을 여러 장점들이 있지 않을까 한다.


살아가다가 문득 외로워지고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오늘의 삼단논법을 떠올려야겠지. 공짜 사랑은 없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야옹이라는 남자가 내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내게 없는 장점을 잔뜩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아 움츠러들 땐,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떠올려야겠지. 나 스스로 그가 주는 애정의 일방적인 수혜자에 머물지 않도록. 그가 건네는 마음을 값싼 동정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그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무료 서비스가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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