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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Jan 09. 2022

여성 인권과 인간 자유의 타협점

<요아킴 브테바엘, 아담과 이브>

-태초의 인간, 태초의 여성, 태초의 남성.


-


오늘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떤 한 글을 보았다. 바디 프로필이라는 단어를 구글링 하다 우연히 들어가 보게 된 게시글이었는데,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고 있는 일반인 여성들의 바디 프로필 문화가 조금 기괴한 방향으로 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글은, 육체의 아름다움과 근육의 곡선을 뽐내야 하는 '바디 프로필'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요즘 여성들의 바디 프로필 사진들이 포르노 혹은 성인 잡지 화보처럼 기괴하게 진화되고 있어 눈살 찌푸려진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의견에 조금은 놀라웠다.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우선  글은 결단코 젠더 갈등적인 이슈 혹은 PC 주의로 이끌고  의향이 없음을 밝힌다. 혹시라도 그런 문장이 나왔다면 그것은 오해이며 남녀 문제이기 이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많고 많은 인간들  하나로서  문제를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나는 그 글에 대해 이질감을 느꼈다. 쉽게 한 문장으로 다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어 이것들을 어찌 글로서 모두 풀어나갈지 걱정이지만, 두서없더라도 최대한 오늘 느낀 내 고민을 여기 털어놓으려 한다.


 속옷만 입은 채 모두가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육체를 드러내는 것, 일명 '보여주기' 사회인 현시대에서 대 유행 중인 바디 프로필 문화. 사진을 찍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보여주기' 시대에 살면서 바디 프로필 역시 자연스럽게 그 문화에 무엇보다 빠르게 유행되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나를 드러내는 것, 나의 몸과 정신과 얼굴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걸맞은 문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글이 말하기를, 요즘 유행하고 있는 여성들의 바디 프로필은 그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육체미를 뽐내고 근육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그저 노골적으로 자신의 몸 선과 섹스어필만을 위해 찍는 사진들 같아 불편하고 기괴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러나 생각이 조금 다르다.



 성인 여성의 섹스어필이란 과연 어느 수준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인스타그램 혹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의 알몸 사진을 올리고 노골적으로 중요 부위를 노출시키는 것. 우리는 이것을 섹스어필이라 부른다. 그러나 요즘은 그 단어의 경계선 자체가 모호해지고 있다. 굳이 '노골적으로' 어느 한 부위를 확대해 찍거나, 포르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만한 표정을 지은 채 찍은 게 아니더라도, 수영장에서 찍은 비키니 사진들과 몸 선을 지나치게 강조해 찍은 평상복 사진도 정말 엄연히 본다면 섹스어필 축에 속할 수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그 기준을 모두 누가 정한단 말인가? '이건 섹스어필 사진이니 안 돼!' 하는 것과 '이건 섹스어필 사진이 아니고 건전한 몸 사진이니 괜찮아!' 하는 그 기준을 누가 정한단 소리이다. 설마 기준을 정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누가 그 사진들을 올리는 데에 함부로 검열하며 '올리지 마!'하고 개인의 자유를 탄압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내가 오늘 본 그 글은 모순되게도 유독 그런 바디 프로필을 찍는 '여성들'에게만 비판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하고 특히 운동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봐온 덕에 정말 수없이 많은 바디 프로필들을 봐왔다. 글에서는 유독 '포르노처럼 찍는 여성 바디 프로필'에 집중이 되어있었고, 남성들의 바디 프로필에 대한 의견은 조금도 볼 수 없어서 매우 의아스러웠다.


 지나친 섹스어필을 하는 바디 프로필을 보며 눈살 찌푸릴 순 있으나 그것이 왜 유독 여성에게만 향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필자가 여태 봐온 바디 프로필은 남녀 구분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콘셉트대로, 방향대로 찍어온 사진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성이라 해서 지나치게 근육만을 강조하고 '건전하게' 찍지도 않고, 여성이라 해서 지나치게 '불건전하게' 찍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추가적으로 드는 의구심이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벗든 벗지 않았든 그저 야릇한 눈빛을 짓지 않고 ‘근육을 짜는’ 사진은 건전한 것이고, 야릇한 눈빛을 지으며 몸 선을 강조하는 사진은 불건전한 것인가? 불건전과 건전의 기준은 각자 다른 것이고 상대적인데, 제 3자가 남의 사진을 자신만의 잣대로 불건전과 건전의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욕조와 소파, 침대 심지어는 야외 등등 남녀 모두 장소와 콘셉트와 표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콘셉트대로 찍는다. 자신들이 돈을 지불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바디 프로필이기 때문이다.


허나 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지나치게 성 적화되고 있는 바디 프로필로 향하고 있다면, 그 비판은 성별 구분치 않고 '불건전한 바디 프로필을 찍는' 여성 남성 모두에게 향해야 할 텐데, 그 글쓴이와 댓글들은 마치 선택적으로 여성만 골라 비판하듯 오로지 '불건전한' 바디 프로필을 찍는 여성들에게만 향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오히려 여성들이 같은 여성들의 자유를 누르려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선택적으로 여성들의 바디 프로필만을 비판할까, 싶은 이유가 순수하게 내 마음을 강타했다.






 추가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성인 여성의 섹스어필은 아예 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오늘날 여성 인권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여전히 이슈 되는 문제이고 여전히 인류는 이 문제에 열렬히 토론하며 의견을 나눈다. 애석하게도 필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까지 하며 철저하게 알진 않지만, 그런 문제가 사회에 화두 될 때마다 동성 친구와 여성으로서 여성 인권에 관한 근본적 토론을 해왔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즉 적어도 앞으로의 인류에게 성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글을 보며 한 가지 철학적인 고민이 들었다.



 여성인권이라는 말로,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를 억누른 채 살아야 하는 걸까?



 예시를 한번 들어보자. 내가 약 3달간 피눈물 흘리는 노력으로 10KG을 감량했고 바디 프로필을 찍으려 한다. 복근이 장착되고 몸의 선은 살아났다. 그런 나는 하얀 배경지에서 근육을 쥐어짜며 '근육'에 초점 맞춰진 사진이 아니라, 몸의 선이 강조되고 십 일 자 복근과 또렷해진 나의 이목구비가 잘 보이는 '섹시한' 화보를 찍고 싶었다. 하여 나는 침대 세트장을 예약했고 침대 위에서의 다양한 포즈들과 입을 속옷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드는 의문점.



나는 이러한 자세를 하고 싶고 침대 위에서 이런 눈빛을 짓고 싶은데, 이것은 분명 '불건전한 바디 프로필'이고 '여성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지나친 섹스어필적인 포즈'이기 때문에 하고 싶더라도 꾹 참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무리 그 포즈와 그 눈빛을 짓고 싶어도 '그건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지나친 섹스어필이기 때문에 안 돼! 이상해! 포르노 찍니?' 하는 말들에 내 자유를 억누르면서까지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 인권인가, 나 자신의 자유인가.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랍 국가에서 히잡을 쓰는 것은 명백히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또 그것을 떠나 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당연히 사라져야 할 문화이다. 그러나 오늘 본 글에서 말한 대로라면 '불건전한 바디 프로필' 역시 여성의 지나친 성적 대상화로 여성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행위이다.(불건전한 바디 프로필 문화에 반감을 가진 글이었는데도 남성들의 섹스어필 바디 프로필에 대해서는 왜 다루지 않은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아무튼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소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직 여성 인권이라는 명목 하에 히잡이든 불건전한 바디 프로필이든 섹스어필이든, 모든 것을 자제한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여성으로서 그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수적인 토론 주제라는 것을 매우 잘 안다. 그러나 여성 인권 이전에 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질문을 묻고 싶었다. 이것도 또 하나의 검열이 아닐까, 라는 의문 말이다.






 인간의 자유와 여성 인권의 갈등.

 그 타협점은 도대체 어디일까. 자유를 누리고 싶고 내 마음대로 당당히 섹스어필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짓이기 때문에 함부로 하면 비판받을 수도 있으니, 나 자신을 참고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여성 인권을 전혀 침해하지 못할 법한 '적절한 복장과 눈빛과 사진'들을 장착한 채 모든 여성이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세상이 도래한다면, 여성의 자유와 여성의 인권이 진정 올라갈 것인가. 여성을 향한 범죄가 눈에 띄게 줄어들까. 여성들의 자유는?






 남녀의 본능적 차이는 무조건적으로 존재하는 요소이다. 수컷은 암컷에게 가족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갈 둥지와 제 신체 능력을 어필하고픈 본능이 있고, 암컷은 섹스어필을 통해 수컷의 시선을 이끌고, 그 수컷들 중 하나를 선택할 본능 말이다. 바로 그 본능 덕에 여성의 아름다운 외모란 그 예부터 중요한 이야깃거리이자 화제였고, 남성의 사회적 위치의 대한 야망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인간이기에 앞서 동물이기에 우리의 DNA에 각인된 필수불가결적인 요소이다. 나는 오늘날 그러한 우리의 동물적 DNA가 여전히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가령 사진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남녀 모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섹스어필이든 근육 어필이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바디 프로필을 찍지만, 굳이 바디 프로필이 아니더라도 노골적으로 야릇한 성인 잡지 화보를 찍어 그것을 파는 비율은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높다. 나는 그 이유가 어쩌면 암컷의 DNA에 각인된, 수컷에게 섹스어필을 하여 구애를 받아내는 동물적인 본능에 있지 않는가 생각했다. 우리의 이 동물적 욕구는 남녀 모두에게 포함된다. 돈과 능력을 무기 삼아 연애 시장에 뛰어드는 인간의 비율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역시 암컷에게 제 둥지를 보여주고 미래를 보장하는 수컷의 동물적인 본능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이기 이전 동물이다. 우리의 피에 각인된 수컷과 암컷의 본능은 어쩔 도리가 없고, 그러한 성적 차이는 앞으로 인류가 살아가며 무조건 끌고 가야만 하는 생존적 요소이다. 우리는 성평등을 다루기에 앞서 이러한 성 차이를 이해해야만 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근육의 비율이 더 높고 체격이 크다는 것, 여성이 남성보다 더 섹스어필에 본능적으로 욕망한다는 것, 이라는 어쩔 수 없는 수컷과 암컷으로서의 차이 말이다.






 조금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여성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으나 그것이 기어코 내 삶에 개입하여 내 자유를 억압하고, 나 자신의 개성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아 말이다. 기괴하다는 '불건전한' 바디 프로필 역시 본인들이 스스로 돈을 지불하고 스스로 원해서 찍는 사진 아니던가. 그를 향해 불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글을 통해 그들을 집단화하여 한 묶음으로 묶고, 포르노 스타 같다며 그들의 피땀 나는 노력을 마냥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필자 역시 바디 프로필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설사 섹스어필을 위해 찍었다 해서 그 누가 뭐라 비난할 수 있을까? 성인 여성의 섹스어필은 어쩌면 암컷이기에 어쩔 수 없는 본능의 영역이고, 또한 본능의 영역을 넘어선 인간의 자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론 자유와 본능이라는 명목 하에 성 상품화가 공공연하게 넘쳐나는 세상 역시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지름길은 전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끝없이 고뇌하며 토론해야 하고, 그 경계선과 타협점을 정확히 깨달아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인류에게 남겨진 영원한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와 다르게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그 의견 역시 충분히 맞는 의견이다. 나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오늘 보았던 그 게시글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을 옮겨 적었을 뿐이고, 페미니즘에 대해 빠삭하게 공부하지도 못했기에 이 글에 많은 허점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순됨과 기묘함을 느껴 이 글을 적었다.


 여성에게만 씌우는 히잡은 당연히 여성 인권 침해이므로 없애야 하고, 섹스어필 바디 프로필 사진들 역시 없애야 한다는, 어쩌면 또 다른 검열과 여성의 자유에 대한 억압과 모순 말이다. 여성의 인권과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 그 둘은 오늘도 내 머릿속에서 충돌하며 전쟁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인간으로서 이 숙제를 아주 중요시 여겨야 하며 또 언제까지고 토론해야 할 중대한 임무라는 것이다. 우리 미래의 자손들을 위하여. 조금 더 나아질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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