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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Jan 28. 2021

달리기, 너는 자유다

매일 운동 8주 차에 접어들면서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전면 봉쇄가 실시된 12월 15일. 봉쇄 두 달쯤 전 이미 반 봉쇄가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요식업장은 비즈니스를 전면 중단하고 배달이나 테이크어웨이만 계속해왔다. 12월의 봉쇄는 이보다 더 강력해져서 약국과 슈퍼마켓을 제외한 모든 사업체가 전면 휴업하게 됐다. 그래서 시내에 나가도, 큰길을 걸어도, 연 곳이 아무 데도 없어서 황량하기 그지없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통금까지 시작되어 저녁 9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 밖에 나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사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밤에 나가서 할 것도 없고 잘 나가지도 않지만, 선택지가  줄었다는 상실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코로나 이후로 활동량이 많이 줄었으나 봄-여름을 지나오는 동안 운동을 할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다가, 봉쇄 일주일 전부터에야 요가 스튜디오에 매일 나가기 시작했다. 언리미티드 패스를 끊고 이제 좀 열심히 해 보려는데, 전면 봉쇄라니! 이미 산 패스권은 어쩔 수 없고, 그래서 그 이후로 매일 온라인 수업이라도 들어보자 했다. 2주쯤 매일 요가를 하다 보니 미친 척 매일 운동을 두어 달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욕이 절로 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다’라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들어 메뉴에 달리기를 추가했다. 해가 길고 날이 따뜻한 4월경부터 늦어야 10월까지만 야외 달리기를 해 왔는데, 이제는 실내에서 달릴 곳이 없기 때문에 예외를 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이 겨울 달리기는 보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다. 비몽사몽간에 운동복을 입고 나가지 않으면 점점 잠이 깨면서 이 날씨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는 게 맞는가 질문하는 이성이 고개를 쳐들기 때문이다. 커튼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거나 날씨 앱으로 온도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그 확인의 과정이 나를 더 의욕적으로 나가게 돕기보다는 핑곗거리를 찾도록 돕기 때문이다. 어차피 확인해봤자 열흘 중 여드레는 비가 추적추적 오고 영하를 웃도는 회색빛 북서부 유럽 겨울 날씨다.


나의 달리기 동선. 빨간 점에서 시작하고 끝나며 거리는 6.6km


나는 달리기의 심플함이 좋다. 달리기 위해 어딘가 꼭 가야 할 필요도 없고, 장비를 챙길 필요도 없다. 러닝화만 신고 집 밖을 나서면 그것으로 끝이다. 옷을 갖춰 입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건 선택사항일 뿐이다. 스웻 팬츠에 티셔츠를 입든 레깅스에 브라탑을 입든 나 좋을 대로 입으면 되고, 그저 편한 러닝슈즈 한 켤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달릴 수 있다. 달리기에 있어서 좋은 신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삼 년 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는 집에 굴러다니던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었는데, 안 신은 듯 가벼웠지만 충격을 흡수할 쿠션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가 자세까지 바르지 않아서 목과 어깨의 통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일주일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회사 다니면서 매일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그 이후로 러닝슈즈를 고심해서 고르게 되었다. 지금은 아식스를 신는데, 매장에 가면 나의 러닝 스타일을 분석해서 알맞은 모델을 추천해준다. 암스테르담 아식스 사무실에 다니던 친구가 그 어떤 메이저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도 아식스만큼 러닝슈즈 R&D에 노력을 기울이는 곳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아주 만족이다. 다만 디자인만큼은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사실 지금도 그건 잘 안 된다)


나는 달리기가 주는 외로움과 소속감의 공존이 좋다. 외로움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혼자다. 달리기를 경험하는 유일한 주체로써 외로이 그 여정을 시작하고 또 끝내야 한다. 그러나 소속감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혼자가 아니다. 뛰면서 마주치는 모든 러너들과 같은 그룹에 속하는 것이다. 달리러 공원에 가면 언제나 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뛰면서 그들의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거친 숨소리를 듣고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느끼며, 이것은 뜀박질이 힘겨워질 때 나를 뒤에서 밀어주는 순풍이 된다. 사는 것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내가 하는 경험을 대신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인생은 어차피 혼자’라는 말은 너무나도 차갑게 진실을 말한다. 하지만 그 여정에서 분명 잠시일지라도 같이 뛰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덕분에 더 멀리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들을 보며 힘내어 뛰다가 뒤쳐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앞지르기도, 내 페이스로 돌아가 나에게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때때로 그런 용기를 주는 존재이며 큰 그룹의 다이내믹 안에서 주거니 받거니 각자의 경주를 따로 또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니, 외롭지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달리기 코스를 걷다가 만난 경찰. 암스테르담 경찰관들은 가끔 말을 타고 순찰을 돈다.


나는 또, 달리기가 강제하는 단호함이 좋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뛰러 나가기 전 이미 어느 정도 거리를 뛸 것인지 마음속으로 정해두는 편이다. 가끔은 바로 직전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생각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전날 밤에 이미 정해놓는다. 그리고 다음날 내 컨디션이 어떻든지 간에 결정한 대로 뛰고 온다.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느니 미리 정해두고 여지를 남기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내 컨디션에 상관없이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야 마는 인생과도 닮았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나, 저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백 번 해봐야 마음만 더 고달파질 뿐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어차피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시원하게 받아들이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면 미리 고민할 필요 없다. 이미 끝낸 달리기를 두고 괴로워하거나 시작하지 않은 달리기를 미리 걱정하며 잠 못 드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아무튼 이렇게 정해놓은 거리를 완주하는 횟수가 쌓일수록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는 더 뛸까 말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달리던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단단한 것이었다.


삼 년 전까지만 해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냈던 나였다. 그때 누가 나에게 곧 달리기 마니아가 될 거라고 말해줬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마른 체형이어서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조차도 내가 건강하다고 착각했고, 체중조절을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운동을 하지도 음식을 가려 먹지도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꾸준한 운동 덕에 웬만해서는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를 느끼고 나니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게으름을 이긴다. 다소 식상한 말이지만 그만큼 사실이다. 나의 경우 매일 운동을 2주 정도 하고 나니 뇌가 드디어 이걸 습관으로 받아들였다는 신호가 왔는데, 그건 바로 운동할 때마다 드는 ‘할까 말까’ 모먼트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할까? 말까? 조금만 할까? 내일부터 할까? 매일 운동의 기적을 경험하고 싶다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 감정은 곧 없어지고 결과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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