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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Jan 25. 2021

자전거의 도시

내가 더 이상 걷지 않게 된 이유


암스테르담은 자전거가 정말 많다. 정말 많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을 정도다.


일단 세계적으로 인구수 대비 자전거가 가장 많은 나라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정부에서 낸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네덜란드에 총 1,700만 명의 거주자가 있는데 자전거는 2,300만 대가 있다고 한다. 차, 기차, 버스, 트램, 도보 이동을 비롯해 모든 가능한 이동수단을 통틀어 자전거 이동의 비율이 국가적으로 27%에 달하며 특히 암스테르담만 따져보면 무려 48%다. 좀 더 피부에 닿게 설명하자면 내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열의 여덟이 자전거로 통근하는 정도. 나머지 두 명은 암스테르담에 살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나 기차로 통근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우리 회사는 평균 연령이 낮기 때문에 외곽의 큰 집에 사는 사람보다는 시티 안에서 파트너 혹은 하우스 메이트와 함께 살거나 혼자 사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래서 정말 다른 도시에 살지 않는 한, 또 집이 통근 사정거리 (자전거로 약 25분) 밖에 있지 않는 한 자전거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당연하게도 통근이 이동의 전부는 아니다. 암스테르담 사람들은 정말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간다. 나만 해도 7km 정도 떨어진 친구 집에 갈 때 자전거를 타며, 도시에서 15km 정도 떨어진 페스티벌이 열리는 숲에도 당연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간다. 멀리 가는 예를 든 것이므로 당연히 이보다 짧은 거리는 두말할 것도 없다. 한국처럼 대중교통망이 촘촘하게 짜여있지 않고 연결도 효율적이지 않아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두 배, 세 배 빠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전거로 15분 소요되는 거리도 멀다고 생각했다. 15분이면 너무 숨 가쁘게 달리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4km 내외를 이동하는 셈인데, 살다 보면 좀 더 멀리 갈 일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사정거리가 점점 넓어지게 된다. 특히 놀러 갈 때 친구들과 만나서 같이 이동할 일이 많은데 이때 페이스를 맞춰 얘기하면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페스티벌 공원 앞 자전거 주차장 - 많아 보이지만 빙산의 일각이다


이제는 심지어 집 앞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도 걸어가는 시간이 아까워 자전거를 탄다. 한 손으로 운전하는 기술만 터득하면 무거운 장바구니를 옮기기에 오히려 걷기보다 편하다. 한 손으로 운전하는 기술이라니! 한국에서도 주말이면 가끔 안양천을 따라 한강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왔지만, 그렇다고 한 손으로 편하게 자전거를 탄다든가 두 손으로 팔짱 끼고 타는 네덜란드인 수준은 아니었다. 지금도 두 손 떼고는 운전을 못한다. 얼큰하게 취해서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우당탕 넘어져 턱이 까지고 나서부터는 엄두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시도와 사고 끝에 이제는 두 손으로 핸들을 잡으면 노력 과다로 느껴지는 으쓱함 정도는 갖추게 되었다.


비가 워낙 자주, 추적추적 내리는 네덜란드의 특성상 자전거를 탄다는 게 항상 즐거운 경험은 아니다. 특히 운하가 길만큼 많은 암스테르담에서는 종종 배가 지나가야 해서 다리를 올린다. 그러면 보행자, 자전거, 차 모두 멈춰 다리가 내려가기만을 기다리는데, 영하 가까운 겨울에 비에 쫄딱 젖어 집에 가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신세한탄이 절로 나온다. 종아리 너머로 오는 긴 카디건이나 코트를 편하게 못 입는 것도 가끔 불평할 만한 일이다. 긴 외투 끝을 단단히 모아 한 손에 잡고 있지 않으면 바퀴에 말려 들어가 자전거가 갑자기 멈추고, 옷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름때 얼룩이 져 버린다. 멋 내려고 나갔다가 그렇게 상해버린 옷이 벌써 두 개째다.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한 가지는 있어야겠지. 그건 바로 예쁜 신발 상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동은 항상 자전거로 하고 실내에서만 걷는 데다가 사실 사무실에 있다 보면 걸을 일 자체가 많이 없다. 사무실을 안 나가는 지금은 걸을 일이 더더욱 없어졌지만 의식적으로 하루에 한 번은 산책하러 나가기 때문에 운동화를 신을 일은 많아졌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암스테르담에 오고 나서 걷기가 많이 줄었고, 때때로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부족한 운동량은 공원을 뛰거나 요가 스튜디오, 짐에 가서 채워왔으나 걸음이 부족하다는 건 생활 필수요소 무언가가 빠진 기분이다. 숟가락만으로도 밥을 다 먹을 순 있지만 젓가락도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하는 류의 기분 말이다. 하지만 몇 년 된 신발도 여전히 새것 같으니 기분은 좋다. (그렇다고 쇼핑을 덜 하게 되지는 않는다)   



*통계 출처: https://www.government.nl/binaries/government/documents/reports/2018/04/01/cycling-facts-2018/Cycling+facts+201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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