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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Jan 23. 2021

암스테르담 세 번째 아파트

네덜란드 영주권을 받았다


지금 살고 있는 Spaarndammerbuurt.


첫인상이 좋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전에 살던 두 아파트가 모두 운 좋게도 정말 좋은 동네에 위치해 있어서 무슬림식 빵모자를 쓰고 튜닉을 입은 아저씨들이나 터키쉬 슈퍼마켓, 왠지 음침해 보이는 골목길은 본 적이 없었다. 이 새로운 동네는 그런 면에서 달랐고 모로칸 이민자들도 꽤 보였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딱히 달라 보이는 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출신의 다양성이 있다는 게 오히려 좋다. 이전 동네들이 롯데타워 몰에서 쇼핑하는 느낌이었다면, 이 동네는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야간 도매 쇼핑을 하는 느낌이랄까? 전자는 깔끔하고 가격이나 서비스가 보장되어 있는 대신 지루할 수 있고, 후자는 정신없고 지저분한 대신 진짜의 재미남과 모험이 있다. 어떤 쪽이 딱히 낫다고 하긴 힘들다.


여기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터키 슈퍼마켓이다. 집 바로 앞 모퉁이에 하나, 길 건너편에 하나 더 있는데 나는 길 건너편 슈퍼마켓을 좋아한다. 청과류가 정말 신선하고 맛있는데, 여기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 통틀어 터키 사람들이 운영하는 슈퍼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이 미스터리다. 어디 특별한 곳에서 물건을 떼어오는 건지, 맛있는 걸 고르는 눈을 타고나서 그런 건지 알 수 없다. 이 집 아저씨는 특히 너무나 친절해서 갈 때마다 대추야자라도, 귤이라도 하나 주고 싶어 하신다. 네덜란드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전무한 바람에 처음에는 강매라도 하시려는 건가 하고 당황했다. 이분들은 이민자라 네덜란드어를 배워서 하시고 영어는 제2 외국어라 잘 못하시는데, 내 네덜란드어가 굉장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내 예상을 벗어난 갑작스러운 얘기가 나오면 의사소통이 가끔 어렵다. 이사 오고 나서 내가 정말 이 동네 주민이 되었구나 느낀 건 이 슈퍼 주인아저씨가 지나갈 때마다 오랜 가족 보듯이 반갑게 인사를 해 주신 덕분이다. 이 집에 배추와 중국 무가 항상 있어서 아시아 슈퍼까지 가지 않아도 겉절이나 섞박지를 척척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아주 큰 장점이고, 처음 보는 터키 과자를 하나씩 도전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내가 티라미수 다음으로 좋아하는 바클라바라는 터키식 디저트도 파는데, 어느 베이커리에서 납품받아 오는 건진 몰라도 겉바속촉이 환상적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놀러 올 때면 보통 이곳의 바클라바를 사다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디저트로 내놓는데 호응이 좋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건 집 바로 앞에 있는 웨스터 파크라는 공원. 두 번째 집 바로 앞에 있던 본델 파크와는 달리 관광객도 거의 없고 훨씬 크다. 1/3 정도는 포장길로 연결되어 로스터리를 겸하는 카페나 직접 브루잉한 맥주를 파는 바, 클럽, 빵집, 아이스크림집, 작은 영화관, 오피스 등이 있고 나머지는 정말 잔디나 흙길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날씨 좋은 주말 아침이면 커피 한잔 사 가지고 공원을 돌면서 산책하는 사치를 즐긴다. 본델 파크는 4년 전쯤부터인가 바비큐가 금지되었지만 웨스터 파크는 아직 가능하다는 것이 여름에 가장 큰 이점이다. 공원에는 양과 말이 있는 작은 농장도 있고, 주말 농장 같은 구역이 아주 크게 지정되어 있으며, 강아지 훈련 센터도 두 개나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공원 입구에 있는 훈련 센터는 아주 어린 강아지들이 오는 곳이라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 훈련 시간에 지나가게 되면 까치발 들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공원 카페에서 만난 발랄한 댕댕이



작년 3월부터 재택근무를 해 오면서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세 번째 장점은 회사가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다는 거였다. 중심가 한가운데에 있던 사무실을 booking.com에 점진적으로 넘겨주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Houdhaven이라는 곳에 건물을 세 채 지었다. 두 채는 타미 힐피거가, 조금 떨어진 한 채는 캘빈 클라인이 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정도는 아니지만 그를 지향하는 통합형 캠퍼스를 지었는데 덕분에 델리, 카페, 바, 테라스, 체육관까지 전부 모여있어서 주중에는 사실 집 - 회사만 왕복하고도 만족스러운 생활이 가능했다. 파티를 자주 하던 우리 회사의 특성상 5분이면 집에 갈 수 있다는 건 맘 편히 만취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우리 집은 나갈 준비하는 곳, 아페리티보 하는 곳, 애프터 파티하는 곳이 되었고 코로나가 닥치기 전까지 1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집은 나에게 진정한 나를 찾는 시간과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어려운 적이 있었나 싶을 때도 있었고, 나 스스로에 대한 공부를 이렇게 많이 한 적도 부끄럽지만 처음이다. 사실 이전 두 집에 살던 시절에는 산다는 게 좀 더 단순했다. 인생이 내게 터벅터벅 걸어오면,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한 기분으로 멋쩍게 서서 그냥 내 앞에서 인생이 벌어지도록 두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를 몰랐고, 생각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를 몰랐다. 내가 모르는 게 뭔지를 몰랐다고 한다면 설명이 될까. 당시에는 열심히 순간을 살아온 줄 알았는데, 지나고 나서야 뒤돌아보니 그랬다. 상대적으로 지금의 나는 조금 더 편안하고 명료해진 기분이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보다 더 잘 알게 되면 또 지금의 내가 턱없이 부족해 보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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