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영주권을 받았다
첫 집에서의 생활 2년 후 이사 간 곳은 Wilhelminastraat.
여기도 회사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 심지어 조금 더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다. 집 바로 앞에는 Vondel Park라는 공원이 있었는데, 암스테르담의 센트럴 파크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주로 풀밭에서 피크닉을 하며 보낸 여름과 퇴근하면 조깅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실제로 첫 2년보다 이 집에서 지낸 두 번의 여름이 훨씬 더 길고 덥기도 했다. 유럽의 여름은 너무 아름답지만 그만큼 짧기 때문에 해 나오는 계절이 왔다 하면 모두가 이 악물고 빚 탕감하듯 야외 생활을 한다. 그래서 퇴근하면 와인 한 병에 간식거리를 챙겨 공원에 나와 해 지는 밤 10시까지 놀고, 화창한 주말에는 아침부터 바비큐 도구나 프리즈비 같은 놀이도구를 챙겨 하루 종일 바깥에서 지내기도 한다.
이 집에서 좋았던 점은 의자와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꽤 큰 발코니가 서쪽으로 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나면 으레 와인 한 잔을 홀짝이며 노을을 바라보던 기억이 짙다. 내려다보이는 길 모퉁이에는 분위기 좋은 작은 펍이 하나 있었는데 그 북적임과 생동감 덕분에 발코니에만 나와도 항상 밖에 놀러 나온 기분이었다.
갑자기 발코니 예찬론자가 되어버렸지만, 발코니가 있다는 것은 사실 암스테르담 생활에 있어서 정말 큰 이점이다. 서울에서 항상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았음에도 그 공간이 머무름의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잘 본 적이 없었고 베란다 유무에 집착하는 사람 또한 만난 적이 없으니 큰 차이점이기는 하다. 암스테르담 거주자들에게는 당연히 발코니가 있는 집 선호도가 높은 편이며, 그 최고봉은 꼭대기에 테라스가 있는 집이다. 높은 건물이 없고, 층수가 높더라도 4 - 5층이 대부분인 시내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가끔 놀러 가던 친구 집에 이 루프탑 테라스가 있었다. 천장으로 뚫린 창문을 열고 올라가 수다 떨면서 빛나는 별을 원 없이 보곤 했던 그런 여름밤이 있었는데. 암스테르담은 빛 공해가 적기 때문에 밤에 하늘을 보면 별자리 두어 개는 쉽게 맨눈으로 볼 수 있다.
스물여덟 인생 처음으로 산 집. 그땐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진짜” 어른들이 하는 인생의 과정을 빨리 밟고 싶어 했다. 이직 생각 별로 안 드는 큰 회사에 다니겠다,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도 있겠다, 다음 단계는 모기지를 받아 집을 사는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암스테르담 집값이 이때 즈음 이미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어서 찾기도 정말 어려웠고, 집 매매 시스템이 당연하게도 한국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많이 헤맸다.
네덜란드 집 구매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판매자가 희망 가격을 설정하면 구매자들이 그 가격을 기준으로 내고 싶은 금액을 정해 부동산으로 보낸다. 당연히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가격이 무한정 치솟고, 그 치솟는 가격에는 정책적인 브레이크가 없다.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문제는 몇 명이나 경쟁하고 있는지, 그들이 얼마를 불렀는지는 알 길이 없다는 것. 그야말로 살 떨리는 눈치게임이다. 집 마련하는 한국 친구들에게 이런 시스템 얘기를 해 주면 믿기 어려운 눈치다. 외국 친구들이 한국의 전세 시스템에 대해 그런 것처럼.
집을 사고 나니 렌트할 때와 달리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어 좋았지만 그 스트레스 또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가구가 필요한지, 어디서 사야 할지, 어디에 두어야 할지, 생각하니 끝도 없었다. 지금보다도 네 살 어릴 때였고 집 채워본 경험이 없었으니 아직 취향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이사 들어갈 때 친구들이 입을 모아 집 완성하기까지 1년은 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진짜였다.
여기에서의 1년 반 동안 페스티벌도 많이 다녔고, 여전히 여행도 많이 다녔고, 무엇보다도 베를린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 시작해 한 달에 한두 번은 베를린 친구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오곤 했다. 일도 많이 하기 시작했고, 의무였던 네덜란드 integration 시험도 속시원히 모두 통과했고, 예상치도 못하게 코딩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어 승진도 크게 한 번 했다. 운동, 특히 달리기라곤 진저리를 치던 내가 공원에서 조깅을 시작했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달리는 러너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계속해오고 있다. 한 해 반이 지나고 낙엽이 뚝뚝 떨어질 무렵 내가 네덜란드에 온 주된 이유였던 남자 친구와 5년여의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고, 나는 회사 가까이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아파트로의 이사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