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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Jan 13. 2021

암스테르담 첫 아파트

네덜란드 영주권을 받았다


암스테르담에 와서 처음 살던 곳은 Pieter Baststraat.


국립미술관 바로 앞으로 난 거리들 중 하나다. 주변에는 서울 예술의 전당 뻘인 콘서트 홀, 반 고흐 미술관이나 현대미술관 등이 모인 중심가 중의 중심가였다. 가문 대대로 암스테르담에서 살아온 부자들이나 본국에서 파견 온 외국인들이 회사 돈으로 비싸게 아파트를 렌트해서 사는 사람이 많은 그런 동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많았다.


이 거리 끝자락에는 Loetje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재미있는 건 내가 승무원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온 첫날 첫 외식을 한 곳이 바로 이 레스토랑이었다는 것. 시작하는 연인이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이 사랑에 빠진 필연적인 이유를 찾아내듯, 나도 이곳을 보자마자 별안간 운명론자가 되어 내가 이 아파트에 사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것이라고 외쳤었다. 둘러나 보자는 마음으로 뷰잉 한 첫 아파트가 바로 내가 살 곳이 되다니. 갈수록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좀 어려워졌지만, 당시는 아파트를 구하기가 비교적 쉬웠다.


밖으로 살짝 기운 발코니가 딸린 20평 남짓한 귀여운 집. 내가 속하지 않은 것만 같던 가족과 모국을 떠나 새로 시작한 이곳에서의 삶은 항상 쉬웠다고 할 순 없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고요함에서 비롯된 마음의 평화, 보장된 사생활, 그리고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네덜란드에 온 걸 아는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들은 내 용기가 부럽다고 했다. 멋있다고도 했고,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내 스스로 보는 나보다, 나란 사람을 훨씬 더 좋게 봐주는 그들의 따뜻한 말은 많이 감사했고 때때로 힘든 시간을 헤쳐나갈 용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스스로가 멋있다거나 자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한국을 도망치듯 떠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자마자 빨리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번갯불에 콩 볶듯 한 달 만에 출근을 시작한 곳은 시티 외곽으로 나가는 트램을 30분이나 타고도 내려서 10분은 걸어야 했던 한국 법인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작기 때문에 트램 30분이면 정말 “멀리” 나가게 된다. 도심에 살면서 외곽으로 출퇴근이라니, 종로에 살면서 과천으로 출퇴근하는 셈이다. 유럽 마켓으로의 사업 확장을 목표로 법인을 세운 그 회사는 나까지 합해 고작 3명이 전부였다.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모두가 그렇듯 거기서 내가 관련되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덕분에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 조직인지를 미니어처 모델로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비행하면서 영 굳어버린 머리를 풀기에 좋은 기회였기도 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8개월 간의 한국 회사 생활을 접고, 집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인 Tommy Hilfiger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야 나의 진정한 암스테르담 생활이 시작됐다. 퇴근 후 회사 바에서 한 잔, 흥이 많아지면 다른 펍으로 옮겨 또 한 잔. 패션 업계라는 특성상 재미있는 사람들도 많고 젊은 회사라 친구 사귀기가 너무 쉬웠다. 학점 따기 바쁘던 대학 교환학생 시절 빼고는 외국 생활을 해본 적 없던 내가 드디어 상상에 부합하는 외국 직장 생활이란 것을 처음 해보게 되었고, 무려 25일이라는 자비로운 연차 덕에 휴가 때마다 이곳저곳 많이 놀러 다닐 수 있었다. 주말을 틈타 유럽 이곳저곳 쏘아다닌 걸 생각하면 아마 승무원 할 때 보다도 여행을 더 많이 다녔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에는 나름 일 배우느라 스트레스도 많았던 것 같은데, 뒤돌아보니 이렇게 즐거웠던 기억만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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