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자 2-1 이감독, 진짜 국가대표 되다
땀에 젖은 유니폼, 그것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전부다.
- 폴 스콜스 -
두 번째 미니게임의 종료 휘슬과 함께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전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현장을 취재하고 나니 이 팀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내심 더 아쉬웠다. 그래도 뿌듯했다. 아름다운 축구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과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혹시 당신은 '세상의 모든 기적은 전부 준비된 것'이라던가,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라는 말을 믿는가? 선발전이 끝나고 다음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나는 두 문장을 100% 이해, 아니 믿게 되었다.
"이종인 작가님 안녕하세요?. 일전에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뵈었던 빅이슈 코리아 000입니다."
세상에, 맙소사! 그는 나에게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의 코치직을 제안했다. 세부 조건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며칠 뒤 빅이슈 코리아 본사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도.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전화를 마쳤고 거대한 환호성을 질렀다.
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계약 기간 3개월. 보수는 거의 없었지만 처음부터 돈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 멋진 대회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계약 조건 및 업무 내용에 관한 짧은 대화를 마친 후 곧바로 계약서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 코치 : 이종인>
코치 겸 미디어 담당자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의 내 역할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점점 꿈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소년은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의 전공은 축구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축구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사회인 축구팀에도 가입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도자나 행정가라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먼저 사회인 축구팀 감독이 되는 것부터 시작했다. 몇 년 후 감독으로 경험한 사회인 축구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선수 경력은 거의 없지만 감독으로 프로 무대를 제패한 주제 무리뉴가 그에게 등불이 되었다. 그리고 소년이 서른 살 어른이 되었을 때 기적이 찾아왔다.
지난 시간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감격의 순간도 잠시. 나는 코치로서, 그리고 미디어 담당자로서 팀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국가대표팀 코치는 사회인 축구팀 감독처럼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자리가 아닌가.
겨우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는데, 또 다른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정식으로 축구를 배운 적도, 지도자 연수를 받은 경험도 나에게는 없었다. 인사를 겸하여 감독님과 매니저님께 전화를 걸었다. 무엇을 도우면 되는지,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준비하면 되는지 물었다.
3개월 동안 전체적인 일정은 매니저님께서 관리해주시고, 주 3회 진행될 훈련 프로그램은 감독님이 맡을 것이니 코치는 그것을 옆에서 도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1인분 이상은 훌륭히 해내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코치가 되고 싶었다.
학창시절 나의 포지션은 줄곧 골키퍼였다. 예나 지금이나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골키퍼가 아닌 필드 플레이어를 더 선호하지만 나는 골키퍼로 뛰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만의 특별한 재미가 있었고, 때로는 공격수보다 더 주목받는 포지션이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축구부 활동을 통해 나의 골키퍼 실력은 한 단계 더 성장했다. 축구부 코치를 겸했던 체육 선생님께서 현역시절 골키퍼 출신인 덕분이었다. 지금은 웹과 유튜브에서 얼마든 전문적인 훈련 방법과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배운 것은 내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대회가 있을 때만 한 달 정도 모여서 훈련하는 전형적인 인문계 고등학교 축구부였지만 우리는 뭐든 적당히 하는 법이 없었다. 골키퍼였던 나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흙바닥을 구른 후에야 야간자율학습에 들어갈 수 있었고, 필드 플레이어들 역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며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땀 흘려 체득한 것일수록 오래 기억에 남는 법. 선생님과 함께했던 골키퍼 훈련도 여전히 생생했다. 나는 골키퍼 훈련 프로그램 구상을 첫 번째 임무로 삼았다. 홈리스 월드컵의 경기 방식은 일반적인 11:11 축구가 아닌 4:4 스트리트 사커로 치러진다. 필드 플레이어 3명과 골키퍼 1명이 한 팀이라면 골키퍼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