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하자 2-1 이감독, 진짜 국가대표 되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축구에서 배웠다.
- 알베르 카뮈 -
지난 2017년 4월, 사회인 축구팀 FC 카리스에서 5년간 감독과 선수로 활약한 나의 이야기 축구하자 : 무리뉴 덕후, 사회인 축구 감독 되다가 출간되었다.
처음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2013년, 스물다섯 살에 불과했던 나는 팀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했다. 주말마다 온몸을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운동장에 나섰지만, 축구를 잘하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팀원들의 다양한 요구와 의견을 수렴하면서 조화롭게 팀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물심양면으로 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단장님, 감독인 나를 믿고 존중해준 형들, 그리고 힘이 들 때마다 손과 발을 더해주었던 팀원들 덕분에 20대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시간과 땀이 녹아 있는 책 ’축구하자‘의 출간기념회는 출간 한달 뒤 상암동의 한 서점에서 열렸다. 가족과 친구들, 카리스 동료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축하를 건넸다. 이날 행사의 마지막에는 저자 사인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은 지인이었으나, 모르는 얼굴도 몇 명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말에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특별히 적어드렸으면 하는 문구가 있을까요?"
"OOO입니다.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처음 뵙는 것 같네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평소 친분이 있는 출판사 직원께서 소개해주셨어요.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축구와 관련된 일도 하고 있고요."
"우와 그렇군요! 축구에 관련된 일이라면 혹시 어떤...?"
"마침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는데, 명함을 드려도 될까요?"
그녀는 '빅이슈 코리아'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직함은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 매니저'였다.
"9월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홈리스 월드컵이 열려요. 곧 국가대표 선발전을 진행할 예정인데, 출판기념회에서 들으니 작가님께서 블로그와 SNS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번거롭지 않으시다면 대회 및 선발전 관련 글을 블로그와 SNS에 올려주시면 어떨까 싶어서..."
'홈리스 월드컵이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은데...'
홈리스 월드컵이 훌륭한 취지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 행사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돕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멋진 일을 하고 계시네요! 저라도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그럼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메일 주소를 알려 주시면 관련 자료를 보내 드릴게요. 보수를 드릴 수도 없고, 급한 일도 아니니 시간 될 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럼 메일 기다릴게요!"
주말이 지나고 그녀가 약속한 메일이 도착했다. 나는 전달받은 자료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이야기들을 통해 홈리스 월드컵이 정말 ‘아름다운’ 취지를 가지고 있는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홈리스 월드컵(Homeless World Cup)
: 2003년부터 홈리스 월드컵 재단(Homeless World Cup Foundation)에서 개최하고 있는 국제 축구대회. 'A world without homelessness.'라는 슬로건과 함께 축구를 통해 홈리스에 대한 의식과 태도를 바꾸고, 나아가 홈리스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함.
대한민국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팀은 2010년 브라질 대회를 시작으로 홈리스 월드컵과 인연을 맺었다. 첫 대회에서의 성적은 전체 45팀 중 43위. 11경기를 해서 단 1승을 거뒀고 나머지 경기는 모두 패배했다. 승리는 적었지만, 성과는 있었다. 대회 내내 열성적인 응원과 긍정적인 태도로 그해 ‘최우수 신인팀상’을 수상한 것이다. 홈리스 월드컵의 취지가 단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승이나 다름없는 성과였다. 국가대표팀을 결성하고 운영하는 빅이슈 코리아, 그리고 매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여러 스폰서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은 꾸준히 홈리스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조사한 자료 중에서 한 가지 눈길을 끄는 점이 있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빅이슈 코리아 직원 한 명이 팀의 감독을 맡아 대회에 참가했는데, 2015년에는 그가 아닌 풋살 국가대표 선수 출신 감독이, 2016년에는 홈리스 월드컵 자원봉사자 출신의 네덜란드인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다는 사실이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팀을 이끌어야 할 감독이 해마다 바뀌는 것은 아무리 홈리스 월드컵이라 해도 좋은 일이 아니다. 올해 월드컵에 출전할 감독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리고 올해는 과연 어떤 감독이 팀을 맡게 될까?
'축구하자'에서 밝힌 것처럼 나의 어린 시절 꿈은 축구선수, 그중에서도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사회인 축구팀 FC 카리스의 감독을 하겠다고 자진한 것 또한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꿈을 다른 방법으로 이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고,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언젠가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던가. 꿈은 결국 책 출간이라는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문득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 매니저가 내 책 출판기념회에 찾아오고, 사인회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모든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나도 이 팀의 감독의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 올렸으니 확인해주시겠어요? 그리고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와 벌써! 감사합니다. 어떤 점이 궁금하신가요?"
"자료 조사를 하면서 보니 매년 대표팀 감독이 바뀌었더라고요. 올해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해서요. 만약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면, 저도 지원할 수 있을까요?"
"아, 그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감독을 맡았던 빅이슈 직원이 다시 지휘봉을 잡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