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수상한 선발전

축구하자 2-1 이감독, 진짜 국가대표 되다

by 이종인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끝난 것이다.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아, 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그리고 이왕 돕기로 했으니 취재도 할 겸 선발전을 보러 가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오셔서 멋진 사진 많이 찍어 주시고, 우리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하고 이번 대회 이야기도 널리 알려주세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정말 국가대표팀 감독이 될 거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막상 내정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우주의 기운이, 운명적인 무언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는데... 선발전을 취재하러 가겠다고 한 것도 아쉬움에서 나온 말이었다.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은 그로부터 정확히 열흘 뒤에 열렸다. 나는 취재용 카메라와 함께 축구화와 정강이 보호대 등이 들어 있는 축구전용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는데 ‘혹시 축구를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묘한 예감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선발전이 열리는 영등포공원 풋살 경기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빅이슈 코리아 관계자들과 선발전에 참여하는 선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심사위원단의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는 대한민국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 축구해설가 한준희 위원도 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법 권위가 있고 큰 규모의 대회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매니저님의 소개로 감독님, 그리고 빅이슈 코리아 관계자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감독님은 짧은 머리와 운동복이 잘 어울리는 사나이로, 잠깐 몸을 푸는 모습만으로도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선발전에 참가한 선수들은 피지컬 테스트와 심사위원단 면접, 그리고 미니게임의 세 가지 항목으로 평가를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심사위원단과 다대일로 진행하는 심층 면접이었는데 볼 컨트롤이나 패스, 슈팅 등 축구의 기본기를 점검하는 피지컬 테스트보다 오히려 더 높은 점수가 배점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홈리스 월드컵의 목표가 FIFA 월드컵에서처럼 승리하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선수들로 하여금 축구를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일깨우고 자신감을 얻도록 하는 것이 이 대회의 본질이다. 선수들은 심사위원단과의 면접을 통해 자신이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간절한지, 그리고 대회 이후에는 또 어떤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했다. 축구 실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강한 의지가 있어 발전 가능성이 보이거나 전체적인 팀워크에 도움이 되는 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17 오슬로 홈리스 월드컵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

- 만 16세 이상의 남녀

- 축구를 좋아하는 자

- 빅이슈 코리아 매거진을 판매한 경험이 있는 자

- 성실함과 끈기를 가지고 있으며, 자립 의지가 있어 사회에 다시 복귀하고 싶은 자

- UN 기준 홈리스 정의에 해당하는 자


<UN 기준 홈리스 정의>

1. 집이 없는 사람과 옥외나 단기보호시설 또는 고시원,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2. 집이 있으나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쪽방, 비닐하우스 등에 사는 사람

3.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과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는 사람


그렇다면 어떤 선수들이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가 될까? 2017년 당시 홈리스 월드컵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은 위와 같았다. 전국의 홈리스가 대상이었지만,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들은 대회 전 3개월 동안 훈련을 거쳐야 했다. 이런 이유로 현실적으로 훈련이 가능한 서울의 ‘빅판(빅이슈 매거진을 판매자)’과 서울 및 수도권의 다양한 단기 보호시설에 머무는 이들이 지원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면접을 참관하며 참가자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홈리스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심각한 알콜중독에 빠졌거나, 중증 우울증을 앓았던 이들, 게다가 범죄를 저질러 전과자가 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과거를 뉘우치고 있으며, 삶을 개선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었다.


선발전의 마지막 순서는 미니게임이었다. 선수들을 총 4팀으로 나누어 2경기로 진행한 미니게임은 치열하기보다는 즐거운 분위기였는데 감독님을 포함한 빅이슈 코리아 직원들과 오슬로 현지에서 대표팀의 피지컬 코치를 담당할 것이라는 영국인 자원봉사자 한 명도 선수들과 함께 뛰며 땀을 흘렸다.


그런데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될 무렵, 감독님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선수들의 숫자가 홀수라 한 명이 부족하니 두 번째 경기에 뛸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마침 코앞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를 보면서 몸과 발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축구화와 각종 장비를 챙겨간 것은 훌륭한 판단이었다.


축구의 매력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공 하나로 어울리며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선수들과 함께 뛰며 축구를 즐겼다. 시합의 강도나 선수들의 실력은 주말마다 사회인 팀에서 뛰던 것과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실전처럼 최선을 다해 뛰었고, 몇 차례인가 골도 넣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선발전에 참여한 분들이 조화롭게 뛸 수 있도록 돕는데 집중했다. 이건 나를 위한 경기가 아니다. 그들을 위한 경기였고,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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