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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하자 2-4 이작가, 다시 그라운드로

by 이종인
만약 축구에 마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 호나우지뉴 -


운영진은 대회가 끝나고 휴식과 회복을 위해 한 주간 주말 경기를 쉴 것이라고 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왜 휴식을 취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다리는 천근만근에 온몸이 욱신거리고 걷기조차 쉽지 않았다. 특별한 부상이 없었음에도 피로가 잘 회복되지 않았다. 이보다 더한 강도의 경기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뛰다니, 새삼 프로축구선수들이 존경스러웠다. 가을에 열릴 다음 대회까지 몸을 더 잘 만들어 두리라!


이주 만에 운동장에서 만났지만, 팀원들과 더욱 돈독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회에서 몇 골을 넣은 덕분에 존재감이 생겼는지 형님들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셨다. 대회 전만 해도 서울에서 온 이방인 용병으로 뛰는 것 같았지만, 이제는 정말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것 같았다.


주말마다 맞붙는 상대 팀 선수들과도 친해졌다. 예전에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한, 두 마디 농담을 섞으며 전반적으로 친밀하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공을 찰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회에서의 적대적이고 살벌한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의 축구 모임은 점점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인원이 부족할 때마다 초등학생들과 섞여 공을 차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몇 차례 모임이 성사되지 않으면서 열정적이던 모임 분위기도 차갑게 식었다. 그러던 중 이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중학교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아주 흥미로운 요청을 받았다. ‘2019 전남학생스포츠문화축제’에 출전할 완도중학교 축구부 훈련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9월 대회까지는 약 10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고, 축구부 훈련은 방과 후 수업이 열리는 평일 오후에 진행되어 가게 영업에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은 없었지만, 홈리스 월드컵 때의 경험을 살린다면 충분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로써 나의 축구 인생은 또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맞게 되었다.


완도중은 전문적으로 축구특기생을 육성하는 학교가 아니었고, 이처럼 대회가 있을 때마다 특별히 시간과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축구부를 운영했다. 내게도 학창시절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는 축구부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있으니, 예전 기억과 경험을 살펴보면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나와 친구들에게 축구는 스트레스 해소제 같은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했고, 그마저도 하교 후에 학원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독서실을 다녔다. 그러나 우리는 독서실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만 던져 놓고 인근 놀이터로 나가 공을 찼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귀가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언제나 눈감아주셨다. 앗, 그런데 이 아이들은 중학생이 아닌가? 야자도 안하고...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역시 체육 선생님께 여쭈어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는 중학생들의 전반적인 특성에 대해 귀띔해주시는 한편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성격이나 개별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짚어주셨다. 노련한 교사인 그 덕분에 더욱 수월하게 수업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운동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에서 전공한 교육학과 홈리스 월드컵 대표팀에서의 코치 경험은 일면 도움이 되었지만, 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직접 경험한 완도중학교의 놀라운 점 하나는 아이들의 사이가 굉장히 좋다는 것이었다. 학창시절 내가 경험한 남학교의 선후배 관계는 마치 군대나 사회 조직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학교에는 선배가 후배를 챙기고, 동생들이 형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었다.


축구부 활동을 예로 들면, 선후배 할 것 없이 모두가 공과 장비를 챙기고 또 정리하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었고 3학년들은 때때로 연습 경기에서 저학년을 봐주고, 그들이 더 자신감 있게 뛸 수 있도록 지지해주었다. 완도 아이들의 훌륭한 인성에 대해서는 지금껏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꼭 아름답게만 흘러간 건 아니었다. 작은 다툼과 소란이 발생하기도 했고, 훈련과 연습 경기 과정에서 다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모든 부상이 심각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한 학생이 연습 경기 중 친구들이 자신에게 패스하지 않는다고 화를 낸 사건이었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그저 그 아이 쪽으로 공이 돌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화를 내고 나아가 마음대로 경기장을 떠나버리기까지 했다. 자못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 아이가 귀엽기만 했다. 얼마나 속상하면 그랬을꼬.


경기가 끝난 뒤 따로 불러 혼을 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경기를 멈추고 공개적으로 잘못을 꾸짖었다. 옳은 방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아이는 그 자리에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했다. 재개된 경기에서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즐겁게 축구를 했다. 중딩들이란...


시간은 아무튼 흘러 10주간의 훈련이 끝났다. 여름 내내 뛰어다닌 덕분에 아이들의 얼굴은 검게 그을렸지만 제법 축구 선수다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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