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토너먼트 1

축구하자 2-4 이작가, 다시 그라운드로

by 이종인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 빌 샹클리 -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공차는 일요일’이 찾아왔다. 축구를 할 생각에 시간이 어찌나 더디게 흘러가던지. 신화 FC 선수들은 K리그 팀 전북 현대를 연상시키는 유니폼을 입고있었다. 연령대는 다양했고, 출석한 선수들의 숫자만도 어림잡아 스무 명에서 서른 명에 육박했다.


나를 이 팀으로 인도한 ‘찬’은 신화가 완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팀이며, 팀원 대부분이 완도군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 공무원이라고 했다. 나와 같은 이방인이나 자영업자는 거의 없었다.


나는 첫 경기가 앞으로 펼쳐질 팀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도, 군대에서도 그랬다. 만약 첫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포지션에서 뛸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팀에 적응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이날을 위해 전날 야식을 거르고, 일주일 넘게 몸을 만들어왔다. 경기 투입을 앞두고 찬이 어느 포지션에서 뛰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공격수, 그중에서도 상대 진영 정중앙에서 뛰는 최전방 스트라이커라고 대답했다.


긴장한 탓에 첫 두 경기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다리는 몹시 무거웠고, 간단한 패스조차 쉽지 않았다. 벤치에서 나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팀원들이 ‘저 양반 자신 있는 포지션이 공격수라고?’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힘을 빼고 들어가자고 생각했는데도 힘이 오히려 더 들어가 빠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적어도 오늘 하루 벌어지는 경기 중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슈팅은 아쉽게 골문을 벗어났고, 살이 조금 붙은 탓에 전과 같은 속도로 뛰지도 못했다.


본격적으로 몸이 풀린 것은 2주 차였다. 지난 경기에서 불어난 몸무게를 실감한 덕에 일주일 동안 열심히 몸을 만든 것이 주효했다. 나는 2주 차 경기에서 멋진 중거리 슈팅을 포함해 두 골을 넣었고, 덕분에 나를 팀으로 데려온 찬의 부담도 덜 수 있었다. 경기 후에는 나와 나이가 같은 팀원들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친구들이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적응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많은 덕분에 나는 더 쉽고 빠르게 팀에 녹아들 수 있었다.


완도는 적은 인구에도 뛰어난 축구 실력을 보유한 선수들이 많았다. 당장 신화만 해도 완도군 대표로 뛰는 선수가 다수 있었고, 학창시절 축구부의 주축으로 활약한 이들은 더욱 많았다. 심지어는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선수도 있었다. 다른 팀까지 범위를 넓히면 선수 출신이나, 학교 축구부 출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나보다 축구를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뛰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고, 행복한 일이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축구 경기 자체도 더 재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뛰는 것조차 힘들었던 체력도 성인용 경기장에서 뛸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고, 팀원들과 호흡이 좋아지면서 골을 넣는 횟수도 많아졌다. 주말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다.

2019년의 봄이 왔고, 신화 FC 운영진은 팀원들에게 ‘완도군수배 친선축구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설레는 뉴스였다. 나는 대학생 시절 이후 단 한 번도 공식 축구대회에 나선 적이 없었다. 비교적 실력이 연약했던 카리스에서는 대회 출전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신화는 언제나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대회에 커다란 기대를 품고 있지 않았다. 나는 팀에 들어온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입이었고, 대회 출전을 두고 경쟁하게 될 공격수 포지션에도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다.


대회가 다가오자 주말 경기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동료와 상대 선수들의 얼굴에서는 조금씩 웃음기가 사라졌고, 눈빛도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본 대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수배 친선축구대회에는 완도 내 12개 축구팀이 출전했는데, 섬에서 배를 타고 대회에 출전한 팀과 선수들도 있었다. 완도의 축구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4팀씩 3그룹으로 진행하는 조별 예선은 각 조 1위와 2위가 8강에 자동 진출하고, 각 그룹 3위 중 성적이 좋은 두 팀이 남은 8강의 두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팀의 조 편성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팀원들의 객관적 평가는 2강 2약이었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2강으로 분류했고 충분히 2승 이상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첫 경기에 뛸 선발 명단이 발표되었다. 내 이름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지만, 실제로 경기에 뛰지 못하게 되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실망할 겨를이 없었다. 팀원들이 경기를 잘해서, 우리 팀이 치르는 경기 숫자가 많아질 때 내게도 경기에 출전할 기회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첫 경기 상대는 우리 조에서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았고, 대회를 앞두고 치른 연습 경기에서 우리가 커다란 점수 차로 승리한 팀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는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몸이 덜 풀렸는지 실수가 잦았고, 상대는 우리보다 컨디션이 훨씬 좋아 보였다. 연습 경기에서 보이지 않았던 선수들도 있었다. 상대는 기회를 잘 살려 득점에 성공했지만, 우리는 반드시 살렸어야 할 몇 차례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쉬운 승리를 예상했던 팀에게 패하면서 조별 예선 통과에 먹구름이 끼었다. 자력으로 8강에 진출하려면 남은 두 경기에서 모두 이겨야만 한다.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는 점심 식사를 마친 오후에 열렸고, 이번에는 선발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사실 선발 명단을 짜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회 규정을 정확히 만족시키면서, 경기에 승리할 수 있는 최상의 전력을 내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규정에는 11명 중 20대, 30대, 40대가 각각 최대 몇 명씩 출전할 수 있는지 정해져 있었다. 팀 전력의 중심축이 포진한 20대와 30대 파이에 어떤 선수를 선발로 출전시키는가는 특히 더 어려운 문제였다. 내가 이 팀의 감독이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곧이어 시작된 신화 FC의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이자 아마추어 선수 이종인의 완도 공식 데뷔전. 나는 감독님의 기대와 믿음에 부응하고, 팀의 조별 예선 탈락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 팀 다른 선수들도 어느 때보다 전투 의지를 불태웠다. 그 때문인지 조별 예선 2차전은 첫 경기와 다르게 흘러갔다. 우리는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잃지 않으며 편안한 승리를 거뒀다. 나도 한 골을 득점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이로써 조별 예선 2경기 1승 1패. 8강 진출의 불씨를 살렸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하면 토너먼트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비겨서 3위로 진출하는 경우의 수는 머리에서 지워야 했다.


조별 예선 최종전 상대는 이미 2승을 거두고 편안히 8강행을 확정한 완도 FC. 우리와는 주말마다 운동장에서 맞붙는 팀이었다. 8강 토너먼트를 준비하기 위해서인지 완도 FC는 어느 정도 힘을 뺀 선발 명단을 경기에 내보냈다. 하지만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우리는 정예 전력으로 맞서야만 했다. 이전 경기 득점의 효과였는지 나는 이번에도 선발 투입되었고, 경기에서 지면 탈락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뛰었다. 모든 팀원이 이를 악물고 뛴 덕분에 우리는 2:1 승리를 거뒀고, 결국 8강 토너먼트에 오를 수 있었다.


단 세 경기 만에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경기는 치열했고, 상대는 거칠었다.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거나 안일한 플레이를 한다면 나 혼자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팀에 피해가 갔다. 팀원 중 일부는 그러한 부담감 때문에 대회 출전을 바라지 않는다고도 했다.


아마추어 축구대회도 이러한데 수백 수천억이 오가는 프로축구세계는 어떨까. 레알 마드리드나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처럼 커다란 기대를 받는 팀들의 스트레스는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이다.


대회는 다음 날 재개되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신화 FC는 8강과 4강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두 경기 모두 극적인 승부였다. 8강에서는 두 골을 먼저 넣고 상대에게 실점하는 바람에 경기 막판까지 쫓겨야 했고, 준결승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나도 두 경기를 교체 없이 뛰었다. 특히 준결승부터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는데, 전날 두 경기를 치르고 새벽까지 가게를 여느라 제대로 쉬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쉴 수 없었다. 감독님으로부터 결승전에도 선발로 출전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후에 열린 결승전에서 우리는 이른 시간에 넣은 선취골을 전반 내내 잘 지켰다. 한 골 차 살얼음판 같은 리드였지만, 남은 후반전을 잘 버틴다면 우승은 우리의 차지가 될 것이었다. 나는 후반 10분 팀이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수비수와 교체되었다. 이미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벤치로 돌아온 나는 팀이 내리 세 골을 실점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최종 결과는 1:3 역전패. 준우승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경기를 마친 선수들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저녁 회식의 분위기는 밝았다. “우리는! 신화입니다!”라는 팀 구호를 스무 번 넘게 외쳤고, 이틀간의 피로는 삼겹살과 소주로 회복했다. 나는 그날도 새벽까지 가게를 열었는데, 퇴근하자마자 아주 깊고 오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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