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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Jul 03. 2024

나의 표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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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나의 표류기’의 배경과 인물은 모두 사실이 아닌 허구입니다.


 굴해도는 수십 개 섬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섬에 ‘굴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동굴이 많아서가 아니라 주변 바다에서 굴이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 섬에서 생산하는 자연산 굴이 전국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때도 있었다. 물론 굴의 맛과 품질 또한 훌륭하다. 군(郡)의 하고많은 섬 중 유독 굴해에서만 굴이 잘 자라는 까닭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굴해도 굴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섬 곳곳에 얕고 또 넓게 솟아 있는 패총(貝塚)이 그 증거다. 연에 한두 번씩은 도시 대학의 고고학자와 인류학자 무리가 연구를 목적으로 굴해의 조개무덤을 찾아왔다. 학자들은 그때마다 ‘고대인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이라거나, ‘피라미드와도 견줄 수 있는 신성한 건축물’이라며 양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섬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주민들은 오히려 조개껍데기를 시멘트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친환경적이면서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는 이 아이디어는 한때 몇몇 군의원들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논의되었으나, ‘역사적 유적의 보존’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만류로 무산되고 말았다. 섬에 살아본 적도 없는 육지 놈들이 도대체 무얼 알고 반대하느냐던 주민들의 볼멘소리도 금세 조개들 곁에 묻히고 말았다.


 내가 도시를 떠나 굴해에 닻을 내린 건 6년 전 여름. 여기까지 흘러온 사연에 대해서는 언젠가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처음 섬에 왔을 때만 해도,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돛을 올려 섬을 떠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빠르면 1년, 아무리 길어도 2년 넘게 섬에 머물지 않을 거라고도. 그래서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더라도 잠시 닻을 내린 거라고 말했다. 돛과 닻 모두 떠날 때를 위해 있는 게 아니던가?

 굴을 많이 먹으면 독심술이라도 부리게 되는 건지, 닻을 내리고 얼마간은 ‘그럼 언제 다시 떠날 거냐’는 사람들 물음에 대답하느라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나의 말과 행동에서 어느 정도 티가 나긴 했겠지만, 이제 막 도착한 사람에게는 분명 적절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조부터 무례했던 몇몇을 제외하면 나는 그 질문이 퍽 마음에 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섬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옅은 설렘과 희망을 품고서 섬살이를 시작했고, 얼마 후에는 도시로부터 얼룩졌던 염세와 냉소도 벗어낼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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