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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Jul 10. 2024

나의 표류기 2

2/8

 삶(live)에는 산다(buy)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나로부터 세상에 필요한 무언가를 내놓고, 그렇게 얻은 가치로 나에게 필요한 걸 구매하는 일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섬에 닻을 내린 후에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도시에서 애써 획득한 4년제 경영학과 졸업장과 회사 경력은 섬살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창피하리만치 정직하고 소란스러운 위장(胃腸)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영광 따위 없었던 도시의 삶을 그리워하며 우아하고 고상한 척을 했을지 모른다.

 가장 고되었던 일을 꼽자면 역시 굴 양식장에서의 일이다. 여느 초심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주로 청소나 상, 하차 같은 일이 배정되었는데, 몸을 쓰는 일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매일 새롭고 힘들 수 있을까. 다만, 보수만큼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나마 몸이 덜 힘든 일은 운전이었다. 상, 하차시킬 필요 없이 제 발로 타고내리는 사람을 실어나르는 일 말이다. 이 섬 굴해에도 어린이집이며 학원 같은 것들이 있었고 아이들을 존경하는 마음과 운전면허만 있다면 누구나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양식장에서 일할 때보다 벌이는 줄어들었지만, 제대로 몸을 써 본 적 없는 내게 운전은 아주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2년 남짓 운전병 경력이 4년제 경영학사보다 훨씬 더 쓸모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놀라고 씁쓸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옆 학원 운전기사인 ‘추’와는 아이들의 등, 하원 대기를 함께 하며 친해졌다. 그는 인구가 수십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 출신으로 내가 대학에 가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중학교 진학을 위해 굴해에 왔다고 했다.

 추 형은 나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그래봤자 삼십 대 후반이었지만 그보다는 더 연륜이 느껴졌다. 외모 탓은 아니다. 그가 언제나 조바심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나른한 뉘앙스로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고, 덕분에 더 쉽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추 형이 아직 미혼인데다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퇴근 후 자주 만나는 이유가 되었다. 미래적이라거나 발전적인 대화는커녕 그저 배와 시간을 적당히 채우고 때우는 것이 전부였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내는 서로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그날도 그렇게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우리의 단골집에는 평소 보이지 않던 이들이 먼저 와 있었는데 들려오는 대화들로 유추해보았을 때 아마도 최근에 이 섬으로 발령받은 자들인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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