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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Nov 17. 2020

글쓰기법칙

10_작가의 습관

19세기 영국 작가인 앤서니 트롤럽은 수많은 장편소설을 발표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의 직업은 전업 작가가 아닌 런던 우체국 공무원이었습니다. 작가로 성공한 후에도 그는 우체국 일을 그만두지 않고 우체국 고위직까지 올랐습니다. 오늘날 런던 시내에 있는 빨간 우체통은 트롤럽이 설치한 것입니다. 프란츠 카프카도 프라하 보험국 공무원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기괴하고 우울하지만 그의 일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는 꽤 유능하고 성실했던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그는 앤서니 트롤럽과 마찬가지로 직장 동료들로부터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카프카도 그의 작품처럼 잔뜩 뒤틀린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인이었다는 말이죠.     


나는 글을 쓰는 동안 세 가지 규칙을 반드시 지킵니다. 우선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 책상에 앉아 1시간 동안 글을 씁니다. 쓸 것이 없을 때도 책상에 앉습니다. 책상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쓸 게 없었는데, 책상에 앉자마자 글감이 떠오를 때도 많습니다. 저녁에는 소설을 읽습니다. 두 번째로 글 하나를 마치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매일 사전을 읽는 것은 세 번째 습관입니다.     


우리나라 직장인에게 회식자리는 골칫거리입니다. 그나마 요즘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내가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1990년대 초반에는 일을 마치면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정상적인 일과였습니다. 술자리에서도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부서장이 소주를 좋아하면 소주를 마셨고, 맥주를 좋아하면 맥주집에 갔습니다. 부서장이 노래하고 싶다면 끝까지 남아 노래방까지 모셔야 했죠. 한국인에게 직장의 술자리는 하루의 피로를 풀어버리는 자리가 아니라 술 좋아하는 직장 상사를 접대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은 직장 상사뿐일 것 같지만, 상사의 입장도 사실은 그리 다를 바 없습니다.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풀어 주기 위해 돈을 들여 회식을 베풀어 주는 것이니까요.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술을 둘러싼 한국인의 문화는 그리 모범적이지 않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영상감독으로 일하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회사를 열었습니다만 곧 사업에 실패하고 공기업에 입사했습니다. 남자들이 많은 특이한 회사 분위기 때문에 일과 후에는 거의 매일 자연스러운 술자리가 이어졌습니다. 새벽 한두 시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술자리 자체가 부담스럽지는 않았습니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술을 마신 다음에는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술을 줄여야 했습니다. 사실은 술을 끊어야 했습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시선詩仙이라는 찬사를 듣는 천재적 시인입니다. 그는 술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술이 들어가면 큰 힘을 들이지도 않고 박진감 넘치고 스케일이 장대한 시를 지었습니다. 이백은 예순한 살 나던 해에 장강長江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 뱃놀이를 하다가 강물에 그림자로 비친 달을 잡겠다며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술을 사랑한 시인다운 죽음이었습니다. 보통 ‘작가’라고 하면 이백처럼 이렇게 술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작가들은 이와는 반대인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백이 술을 마시고 발걸음을 옮기며 즉석에서 글을 지었다는 말이나 술을 마시다가 강물 속 달그림자를 보고 뛰어들어 죽었다는 말은, 중국인들은 워낙 허풍이 심한 면이 있으니 그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특히 술을 마시고 장쾌한 시를 지었다는 것은 더욱 믿어지지 않지요. 이백보다는, 이백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히는 두보杜甫가 더 현실적입니다. 이백보다 11살 연하인 두보는 이백과는 달리 1자 1구를 지어나갈 때 뼈를 깎는 고심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저는 이백과 같은 천재의 경지를 본 적이 없으니 이백처럼 술을 마시고 글을 짓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보통사람을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이백처럼 해서는 좀처럼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프란츠 카프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카프카는 전 생애를 통틀어 단편 몇 편만을 발표했는데 그것도 대부분 미완성입니다. 예외적으로 완성한 것은 아마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변신』 뿐일 겁니다. 카프카의 글은 매우 우울합니다. 세기말적이랄까, 매우 폐쇄적이지요. 폐결핵으로 생을 마친 것까지 고려한다면 그의 일생은 온통 비탄에 휩싸여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생활은 그리 어둡지 않았습니다. 카프카는 대학을 마친 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졸업 후에는 한동안 보험회사에서 법률고문으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가 밥벌이Brotberuf라고 투덜거렸던 첫 번째 직장은 이탈리아계 보험회사였는데, 여기서 9개월 만에 퇴사한 다음 들어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 상해보험회사에서는 폐결핵에 걸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스스로 몸이 약하다고 생각했던 카프카는 평소 건강관리에도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식사는 늘 채식이었고, 여름이면 몰다우 강에서 하루 1마일씩 수영을 했습니다. 날마다 체조도 거르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어떤가요? 소설만 읽고 카프카에 대해 생각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지요?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지만, 사실은 건전한 일상이 좋은 글을 만듭니다.      


저는 글을 써야 할 때는 사나흘 전부터는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술이 정신을 뒤집어 놓으면 생각에 논리가 서지 못합니다. 지쳐버린 정신으로는 써놓은 글에 대한 비판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이도 있지만 이것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제 경우는, 술을 마시고 나서 글을 쓰면 부끄러움만 가득한 졸작拙作이 나올 뿐입니다. 글쓰기를 잘하려면 끈질기도록 강인한 정신과 육체의 상일常一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 덕목은 작가뿐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라도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상적인 건전함이 터프함의 핵심이죠.  글은 술주정하듯 써내려 가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 문제를 풀 듯 치밀해야 좋은 글을 엿볼 수 있는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키는 작가의 몸 어딘가가 불편하면 좋은 소설을 쓰기 어렵다면서 우선 병원에 가서 건강을 되찾으라고 권했습니다.     


"우선 치과 의사에게 찾아가 충치를 치료하고―즉 몸을 합당하게 정비하고―그런 다음에 책상 앞에 앉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간단히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너무도 단순한 이론이지만 이건 내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내 몸으로 배운 것입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도록 해야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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