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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Nov 15. 2020

2_글쓰기는 자신을 위한 겁니다.

글쓰기는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공자는 ‘言之無文 行而不遠(언지무문행이불원)’이라고 했습니다. ‘말에 문채가 없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저는 ‘말이 문장이 되지 않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라고 새겨도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文은 문채文彩를 의미하기도 하고 문장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문장으로 잘 써 놓아야지 그냥 말로만 머물러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은 말을 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도 사라졌습니다. 녹음기와 비디오 등 말과 영상을 기록하는 장비가 나오면서 공자의 표현은 점차로 무색해졌습니다. 요즘은 유튜브가 있으니 굳이 글로 옮기지 않아도 아주 효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말과 표정을 전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죠.


말은 불완전합니다. 전화통화로 대화하다 보면 상대방이 의미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말로만 하니까 답답하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라고 하고 사람을 불러내어 대화하곤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문자로 옮겨 놓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말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영상으로 보면 그 뜻이 명확히 전달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 위해 우선 ‘호모 로쿠 엔스’ 즉,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야 했습니다. 표정과 몸짓이 불완전한 말을 효과적으로 보충했습니다. 하지만 말은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멀리 전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글’로 쓰기 시작했는데 ‘글’에서는 표정과 몸짓을 드러나지 않습니다.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 감정표현까지 다양해지면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장치를 두거나 넌지시 자기 뜻을 표출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작가는 좋은 독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문자로 드러난 것이 글의 전부가 아님을 잘 압니다. 그래서 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부분인 ‘행간行間’을 잘 읽어야 한다고 하지요. 이제는 영상이 그대로 전달되는 시대입니다. 행간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만 살펴도 그 사람이 진실로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글은 전달傳達을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기록과 전달을 위한 기능은 ‘영상’과 ‘녹음’이 글보다 훨씬 더 전달력 좋은 매체가 되었습니다.


영상의 시대에 ‘글’의 효용은 사라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글은 더 이상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전달’이나 ‘기록’ 기능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기능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글 쓰는 사람 본인을 위한 기능입니다. 말을 하기 전에는 오랫동안 생각할 여유가 없지만, 글을 쓰기 전에는 충분히 생각할만한 여유가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수정하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열 문장 이상을 말해야 할 것을 한두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고, 고전의 문장을 인용한다면 너댓 글자만으로도 훌륭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적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간단하고 깊이 정돈하는 철학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생각을 이끌어 내는 아주 좋은 기술입니다. 마음속에만 있던 생각은 글로 쓰는 순간부터 생명력을 가지게 되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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