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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Nov 16. 2020

글쓰기법칙

5_무라카미 하루키와 도러시아 브랜디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다가 턱 막혀 버리는 슬럼프를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부러운 작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삼십오 년 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써왔지만 영어에서 말하는 ‘라이터스 블록’, 즉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내 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쓰고 싶을 때만 ‘자, 써보자’라고 마음먹고 소설을 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글쓰기를 공부하는 수강생들이 읽을 만한 책을 알려달라고 하면 나는 도러시아 브랜디Dorothea Thompson Brande의 『작가수업Becoming a Writer, 1934』을 읽어보라고 추천합니다. 이 책은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글쓰기 테크닉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작가로서 갖춰야 하는 소양, 마음가짐 등에 대해서만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글쓰기 비법 따위를 기대하고 도러시아 브랜디를 선택한다면 당장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조금 실망감을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서너 차례 되풀이해서 읽는 사이에 비로소 ‘작가의 마음가짐’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요. 

 

글쓰기는 마음가짐이 절반입니다. 대부분의 ‘글쓰기’에 대한 교재는 이 점을 빠뜨리곤 합니다. 문장 작성법, 문장 구조론 등에 대한 내용을 익힌다고 해도 글쓰기가 한순간에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작문 교재 몇 권을 읽었다고 갑자기 글이 술술 써지는 것이 아니란 것은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작가는 늘 써지지 않는 글에 대한 비참함을 느껴야 하고, 써 놓은 글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견뎌내야 합니다. 실망감 속에서 헤매지 않기 위해, 작가는 늘 자신이 어째서 글을 써야 하고, 글쓰기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목적지향적인 작가는 글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명확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게 되니까요.


목적의식 없이 무작정 펜을 드는 것은 어디로 향해 돛을 펴야 할지도 모르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글이 써지지 않으면 잠깐 원고지와 펜을 놓고 그 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세요.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이며, 독자는 어떤 사람들 일지 떠올려보는 것도 글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는 글이 막히면 적어도 하루 동안 글을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여행기를 읽거나, 영어사전이나 일본어 사전을 들여다봅니다. (일본어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겨우 떼었을 뿐입니다. 겨우 좀 아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로 사전을 보면 암호문을 보는 것처럼 한 글자씩 읽어나가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지만 그런 단조로운 행동이 마음을 안정시켜 줄 때가 많습니다.) 악보를 읽는 연습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돌아오곤 하지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바로 그때 펜을 집어 들고 주섬주섬 글을 써 나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글이 갑자기 잘 써지는 것은 아닙니다. 글 쓰는 것은 늘 힘써 버티는 인내의 과정입니다. 인기 작가 중에 어디 기름기가 흐르는 얼굴을 보신 적이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김훈 작가는 그렇게 좋은 글을 많이 썼고 원고료도 많이 받았을 텐데도 까칠하고 부스스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작가는 늘 괴롭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는데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아서 괴롭기도 하고, 스토리는 떠올랐는데 그것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워서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것을 산고産苦에 비유하는 이도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옮기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명한 작가들은 글을 아주 쉽게 쓰는 것 같지만 쉽게 나오는 글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원고지에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글을 쓰는 작가도 있습니다. 컴퓨터로 쓰면 좀 더 빠를 것 같지만 컴퓨터로 쓰는 시간이나 연필로 쓰는 시간에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그만큼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다 써 놓은 글을 아예 처음부터 고쳐 써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컴퓨터로 작업해 놓으면 그런 수정의 과정을 조금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니까 글이 잘 안 써진다고 너무 괴로워하거나 자책하지는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글은 버텨서 얻어내는 열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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