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영준 Nov 16. 2020

글쓰기법칙

7_글쓰기는 회복의 과정입니다.

Every writer you know writes really terrible first drafts, but they keep their butt in the chairs. That's the secret of life. That's probably the main difference between you and them. (Anne Lamott)    

모든 작가들의 초고草稿는 끔찍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계속 씁니다. 그게 인생의 비밀이지요. 그게 아마도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과 작가들의 차이점일 겁니다. (앤 라못, <TED>에서)

   

믿어지지 않겠지만, 글쓰기는 ‘힐링’입니다. 온갖 복잡한 생각과 고민을 정리하기 위해 적절한 조언을 구할 수 없다면 일단 노트와 펜을 꺼내서 글을 써 나가는 것만으로도 평화가 찾아옵니다. 내 경우에 있어서는 ‘고민’과 ‘번민’의 감정은 손 글씨로, ‘분노’의 감정에 대해서는 컴퓨터에 글을 쓰는 것으로 풀어내곤 합니다. 어째서 감정에 따라 필기구가 달라지냐면 그것은 감정의 속도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분노의 감정은 불처럼 강하게 휘몰아치기 때문에 감정을 처리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기가 어렵지요. 이럴 때는 분노의 감정을 어딘가에 쏟아 놓아야 하는데 그 감정이 흐르는 속도는 손글씨로 따라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빠릅니다. 이럴 때는 컴퓨터 타이핑이 제격이지요.      


번민의 감정은 분노와는 조금 다릅니다. ‘고민’이나 ‘번민’의 감정은 흐름이 깊고 느린 편입니다. 고민이 되는 대상이나 상황을 한두 개의 단어로 쓰기 시작해서 그것을 곱씹을 시간적 여유가 필요합니다.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한 생각은 곧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때가 많은데, 이럴 때는 오히려 그 감정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손글씨로 호흡을 조절하면서 쓰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물론 이 방법이 모두에게 통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급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통제하기 위해 ‘글쓰기’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특히 분노의 감정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 때 제 구실을 해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일종의 회복healing입니다.     

이따금 주말에 만나 식사를 같이 하는 친척이 계십니다.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 이 분으로부터 크게 도움을 받은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 그분은 그런 도움을 주시면서도 단 한 번도 그것에 대해 내게 드러내 놓고 공치사功致辭한 적도 없습니다. 내 인생의 은인이고 삶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분에게 분노가 많아졌습니다. 이 분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주로 유튜브 콘텐츠입니다. 이 분이 유튜브 내용 때문에 자주 분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이 분과의 저녁 식사 자리가 즐겁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은 유튜브에서 본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화를 내니 그 분과 마주 앉는 시간이 즐거울 리 없습니다. 화를 낼 입장이 아닌 나는 한 동안 참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한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느끼는 감정을 글로 옮겨보시라고 했습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화를 내는 것을 식사하면서 내내 듣기 거북하고, 들어도 머릿속에 남는 것도 아닌 데다, 화를 내는 것은 당사자의 정신건강에도 유익한 것이 아니니 차라리 그것을 노트에 써 보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분은 내게 식사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쏟아 놓아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말도 안 되게 자네에게 화를 내는 꼴을 보여주게 되어 미안하네. 듣는 입장에서는 괴로웠을 수 있을 게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글로 정리한 것을 메일로 보내주시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그분은 그러마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메일을 보내왔는데, 처음 보내온 메일은 역시 두서없는 짜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다 보면 글 쓴 사람의 분노가 느껴져서 나도 짜증이 몸속에 가득 차는 느낌이 듭니다.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차분하게 읽고 짧게 답장을 해드렸습니다. 글의 내용에 대해 “저도 그 내용은 인터넷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군요.”라고 공감한 후에,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게 될까요?”라고 몇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내가 쓴 답장은 주로 질문이었습니다. 이 분은 그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은 유튜브에서 쏟아놓은 콘텐츠를 그대로 옮기는 수준이어서 그 이상의 분석을 하기는 어려웠던 것이죠. 나는 책 몇 권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직접 사서 보내드린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계속하자 그분의 글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더 이상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글에는 짜임새가 붙었습니다. 조리 있게 서술하고 분석과 예측까지 간단하게 덧붙이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더 이상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도 정제하고 맥락을 이해하면서 이성적으로 글을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분과의 즐거운 저녁 식사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차분하게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글쓰기를 시작한 덕분입니다. 글을 쓰려면 일단 흥분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흥분하면 절대로 글이 되지 않으니까요. 글을 잘 쓰려면 차분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의 기둥을 붙잡고 펄럭이는 깃발을 붙잡아 고요하게 만든 다음에야 비로소 써 내려갈 수 있습니다. 몰아치는 감정이 글을 시작하는 원인이 되었더라도 펜을 드는 순간부터는 고요함을 불러들여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옵니다. 이것은 글쓰기가 단순한 기술記述의 기술技術이 아니라 수양修養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엿보게 합니다.     


글쓰기는 마음가짐에서 시작하는 수행입니다. 쉽게 시작해서 빠르게 끝나는 수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긴 호흡으로 지속되어야 하고 평생을 연마하는 마음공부라고 해도 좋습니다. 글쓰기에 많은 테크닉이 동원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스스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감정을 조절하고 차분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觀을 가지는 것입니다. 테크닉은 그다음의 아주 지엽적인 문제입니다. 글쓰기를 위한 마음가짐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어눌하더라도 우직하며, 진지하고 차분한 마음을 가졌을 때만 만족스러운 글이 탄생합니다.     


"글을 써라. 불평불만을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제임스 스콧 벨, 『작가가 작가에게』)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