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일기

선택적 기다림

2019년 9월 12일

by 제인

살아생전 부지런과는 거리가 멀다. 정시 도착에 대한 집착이 없으며 지각은 미덕이고 "우리 조금 느긋하게 살아봐요"의 대표적 아이콘이랄까. 뭐 대충 난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지는 않았지만 일찍 일어났다. 남준이 생일 기념 서포트 이벤트에 가려고. 정말 웃기지. 친구가 나중에 이 소식을 전해 듣고는 천지개벽이라도 난 거냐, 너 어디 아픈 거 아니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친구와 중국 여행을 갔을 때 호텔 체크아웃 시간에 일어나서 씻지도 못하고 나오는 게 일상이었고 예약한 버스 놓치는 일 따위는 내 인생에서 너무나 당연시 여겨지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랐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무튼 그런 내가 쉬는 날 8시부터 일어나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위치한 장소에 갔다는 것부터가 기적이다. 나를 가능하게 만든 건, 바로 너야. 남준아. 역시 덕질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 더 놀라운 건 한창 가는 길에 이미 이벤트 줄이 백 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백 명 넘으면 이벤트 상품을 못 받아. 그래도 이왕 나온 거 가보자 싶어서 갔다가 3시간을 넘게 기다렸다. 중도에 포기하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내부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들,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다양했다. 줄이 반쯤 줄었을 때, 나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먹으러 가려고 택시를 불렀다. 그런데 기사분이 주소를 잘못 알고 전혀 다른 곳으로 가셨다. 그렇게 택시가 한번 날아가는 순간에 갑자기 줄이 확 줄었다. 그래, 그냥 기다려보자. 아깝잖아? 그러나, 이후부터 이 줄은 금방 줄듯 줄지 않았고 결국 3시간을 기다렸다. 물질적인 얻음은 없었지만 나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번 해보니 다음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난 그때의 내 선택에 맡기련다. 인내가 모든 일의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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