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4일
2017년 12월 말에 연말 파티를 하며 유서 쓰는 시간을 가졌었다. 모였던 친구들이 각자의 시간을 가지고 진지하게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었다. 파티를 했던 공간의 멋스러운 사장님이 진행하는 이벤트로 이 유서를 쓰고 모아두면 1년이 지나 받아보는 유서였다. 이 유서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느 날, 메일함이 울렸다. 2017년에 보낸 타임캡슐이었다.
나는 잘 살았나요? 사는 동안 행복했었으면 좋겠는데 죽음을 앞둔 이 순간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보다는 그저 재미있게 살다 가는 것이 나의 존재의 이유였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요. 정말로. 내가 사는 동안 행복했다면 그거면 됐습니다. 더 이상의 삶의 이유는 없으니까요. 나로 인해 남아있는 여러분이 조금이라도 행복했다면 내 존재의 이유는 목적을 달성했네요. 모두 행복하시길 바라요. 남은 생, 나를 기억해줘요.
2017.12.30. 금요일에, 지은 씀
그 날, 갓 29살이 된 지은이가 쓴 미래의 유서. 이 짧은 글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총 네 번 등장한다. 나에게 행복이란 것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왜 행복하고 싶어 할까. 어떤 것을 행복이라고 느낄까. 2019년이 되어 내가 추구하던 '행복'이라는 것의 본질이 어쩌면 나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행복이란,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내 마음이 편한 것,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그 안에서 내가 평온을 찾는 것, 힘든 일이 있다면 무던하게 넘겨내는 것이 내가 지향해왔던 행복한 삶이었다. 그 무던함이 나를 힘들지 않은 인생을 살도록 했다면, 많은 것이 바뀐 올해에는 그 무던함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세상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휘둘리지 않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감정의 깊이가 있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나는 그것을 뒷전으로 놓았기에 행복했지만 그로 인해 나는 굉장히 단조로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 내가 서른 살이 되도록 내 삶의 모토로 삼았던 행복이라는 것의 기조는 잃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많은 것들을 지금이라도 채워 넣어보려 한다. 조금 더 신경 쓰는 삶, 나를, 타인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는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2019년 연말이 되면 서른을 보내는 지은이가 서른한 살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