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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스포어 megaspore Nov 11. 2022

개구장이의 사랑 방식

언젠가 엄마가 아빠를 “개구장(쟁)이” 라고 표현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좀 응? 하는 마음이 되었다. 아빠는 아무리 좋게 묘사해도 개구쟁이는 아니었다. 좋게 표현해도 “골치덩어리” 정도 될까 개구쟁이는 정말이지 아닌 것 같았는데..


엄마랑 아빠는 밖에 산책을 나가셔도 아빠가 소주병을 깨곤 하셨다. (근데 산책 나가는데 소주를..)


아빠는 엄마를 우리집 가장이라고 부르셨고 (여자도 가장일 수 있긴 하다) 아빠가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은 묘하게 맞는 것 같다.


(아빠께 적은 용돈을 주시는 엄마께 하시는 말씀)


”야, 이거 갖고 어딜 가서 뭘 하냐“


”아니, 옆집 남자는 하루 용돈이 이만큼이라던데“


”아니, 그 사람이랑 나랑 같냐! 그 사람은 일하는 사람이고 나는 일도 안 하는데 그럼 하루종일 이걸로 뭐하라고!“


듣고보니 하루종일 놀면 정말 돈이 많이 필요하다..(나도 지금 이 글 쓴답시고 커피와 머핀과 점심 식사와..신랑 고마워)


아빠는 엄마한테 밖에서 낳은 자식이(아빠와 여자친구)아들이면 데리고 오고 딸이면 안 데리고 온다고 하셨다고 한다.(우리집은 딸만 둘이다)


우리집은 식탁 의자가 자주 없어졌었다.

4식구니 원래 의자가 4개였는데 며칠 지나면 3개, 2개 이렇게 줄어들었다.


엄마는 아빠와 두번 이혼하셨는데, 지금은 아빠가 잘 사시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17년전 친언니 결혼식에서 마지막으로 뵙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내 결혼식에는 아빠 자리에 이모가 앉아주셨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실 때나 자식들 얼굴 한번 보여줄거라고 하셨다. (자식을) 만들기만 하고 하나 해준 것 없다면서.


내가 중학교 때 물 안 떠온다고 내 따귀를 때렸다는 엄마와 언니의 증언이 있었고(나는 이상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중학교 때 아빠한테 종아리를 맞아 멍을 감추려고 더운데 까만 스타킹을 신고 갔던 기억이 있다.


암튼 아빠는 이렇게 우리집의 “개구장이”였는데,

아빠를 기억하다보면 좀 특이한 부분이 있다.


내가 중2때 (신기하게 딱 중2..병) 그 당시 연기학원을 다니던(<나>라는 청소년 드라마에서 학주(학생주임)한테 아침 등교길에 머리 맞는 열연을 했었다)친구와 역 앞에 있는 대형 모닝글로리 문구점에서 필기구를 뽀렸..훔쳤다.


그때가 처음이 아니고 동네 문방구(?)에서 몇개를 주머니에 넣었는데 들키지 않아 더 큰 곳에서 시도를 해본 거였다. (나중에 다른 날라리(?) 반 친구한테 모닝글로리에서 잡혔다고 하니 “이 미친년아 모닝글로리에서 뽀리면 어떡하냐!!! (작은 데서 뽀려야지)” 란 말을 들었다.)


모닝글로리 매장은 컸고 나갈 때 그냥 띠~소리가 (허무하고 맥없이) 나서 어느 창고 같은 곳에 끌려가서 반성문 썼는데 다른 아이들이 쓴 반성문이 많았다.


부모님한테 연락하라고 했는데 난 고민했다. 우리집 “개구쟁이”한테 연락해야 할 것인가, 우리집 공식 “가장”, 두딸 때문에 산다는 하루종일 미용실에서 서서 고생하시는 엄마한테 연락해야 할 것인가.


아빠한테 연락하면 또 다시 까만 스타킹을 신어야  할 것이고, 엄마한테 연락하면 딸들이 “착해서” 산다는 엄마가 살 힘을 잃을텐데.


아빠를 선택했다. 차라리 맞자..


학원차 운전을 하시던 아빠가 오셨고, 훔친 필기구 값을 지불하시고 나를 데려가셨다. 나는 긴장했지만 아빠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말 없이 아빠의 봉고차를 타고 집에 갔다. 아빠는 그 이후로도 그 일에 대한 언급을 단 한번도 안 하셨다.


평소의 아빠 스타일이라면 반죽음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는데 아빠는 아주 내 예상과는 반대로 행동하셨다. (근데 반전이 나중에 엄마랑 싸울 때 “내가 지한테 어떻게 했는데, 훔쳤을 때도 아무 말도 안하고 봐줬는데!!” 하며 분노하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직접 나에게 그 일에 관해 비난하신 적은 없었다)


나는 모닝글로리 사건 이후로 놀래서(걸려서) 그 후로 지금까지 남의 물건에 손댄 적이 없다. (오늘 아침에 초1 딸이 손수 색종이로 만든 지갑에 넣어둔 파란 돈 한장을 동의 없이 빼긴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언니의 심부름으로 계단에서 뛰어가다가 발을 삐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파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나타나서 날 급히 업고 병원으로 데려가 주던 일이다.


나는 이제 아빠가 나의 잘못을 눈감아 주었던 일, 번개처럼 나타나 나를 구해주었던 일. 이 두가지 일만 기억한다(하려 한다).


아빠는 나를 사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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