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에 취직하다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by 켈리황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2006년 9월, 2학년이 시작됐다. 미국인들은 좋은 회사에서 인턴쉽을 했고, 정규직 채용도 됐다. 직장을 못 구한 대부분은 미국에 남고자 하는 외국인들이었다.


미시간의 2학년은 1학년보다 훨씬 바빴다. 1학년 때 직장을 구하라고, 학사과정을 여유 있게 하고, 2학년에 나머지 수업을 모두 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인턴을 했던 회사는 정규직 채용을 하지 않았기에, 다시 원점에서 시작했다. 과목도 많아지고, 숙제도 많아졌다. 미리 읽어와야 할 것도 많아서 읽다 보면 새벽이 되곤 했다. 그 와중에 이력서 쓰고, 인터뷰 준비도 했다. 당시 공대 도서관은 24시간 운영이었기에, 거기서 공부를 했다. 잠이 많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밤을 새기도 했다. 예전의 나는 그렇게 못했으나, MBA 비용만 생각하면 잠이 깼다. ‘1년에 1억이다. 투자 비용을 반드시 회수할 거다.’라는 생각에.


MBA 2학년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간 중 하나였다.

미시간은 겨울이면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한다. 한 번은 새벽 2시에 도서관에서 나오는데, 머리가 얼어서 딱딱해지기도 했다. 많이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열심히 하는 내가 대견했으니까.


2007년 초 외국인이 미국 회사에 취직하기는 정말 어려웠다. 미국 경기가 안 좋아 정부가 외국인 채용을 제한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무수한 채용 공고 속에서 ‘외국인 비자 허용’이라는 문구를 찾기는 어려웠고, 그런 회사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지원을 했다. 몇 개 안 되는 외국인 채용 회사들에 이력서를 내고, 인터뷰도 했지만 계속 떨어졌다. 그때도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동기들이 ‘넌 정말 배수의 진을 쳤구나’라고 했지만, 될 때까지 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풀타임 직장은 생각보다 쉽게 구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2007년 1월, 전날 필라델피아에 있는 FMC BioPolymer에서 했던 인터뷰를 생각하며 기도를 했다.


‘주님,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인턴쉽처럼 5월까지 직장을 못 구해도 주님 뜻이라면 괜찮습니다. 다만, 직장을 더 빨리 주신다면, 남은 시간을 1학년 후배들이 인턴 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편안하게 기도를 하며 집으로 왔다.


다음날 FMC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했다고, 축하한다고.


교회 다니기 시작한 지 1년 남짓됐는데, 이런 걸 기도 응답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기쁜 소식을 가족과 동기들에게 알렸고, 약속한 대로 1학년 스터디 모임을 돕기 시작했다.


졸업 후 많은 사람들이 내게 MBA를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그건 당신에게 달렸다'였다. 돌아보면 학생들의 MBA 생활은 각양각색이다. 확실한 건 자기 돈으로 온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살았다. 졸업 후 나를 포함 한국인 3명이 미국에 남았는데, 모두 학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Photo by Janine Meuch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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