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2007년 6월 필라델피아의 FMC BioPolymer에 첫 출근을 했다. 필라델피아는 부유한 도시가 아니다. 곳곳에 슬럼 같은 위험한 곳이 있어서 잘못 차를 몰다가 등골이 서늘하기도 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야 했는데, 첫날 버스를 타니 버스 안이 흑인으로 꽉 찼었다. 모두 나를 희한한 듯 쳐다봤다. 많이 무서웠고, 1년간 꼼짝없이 이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싫었다.
필라델피아는 뉴욕까지 2시간 거리인 미국 동부에 위치해 있다. 같은 나라인데, 중부인 미시간과 동부인 필라델피아의 분위기는 너무 달랐다. 직장인들은 바빠 보였고, 사람들은 불친절했다. 커피 주문 시 종업원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동부 분위기가 억세고 공격적이라는 걸 얼마 안 가서 알게 됐다.
회사는 더 어려웠다. 회의에 참석하면 반밖에 못 알아들어서 늘 얌전했다. 따라가기 바빴으니까. 미국인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면 더 못 알아 들어서 웃기만 했다. 일 얘기는 내 예상 안에서 하지만, 일상생활 얘기는 더 어려웠다. TV 프로그램, 정리 등등 그들의 문화를 난 이해 못했고, 영어를 잘 못하니 말하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서 미국에 온 지 3년째인 나의 자존감은 여전히 바닥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 MBA Rotation Program으로 입사했었다. 약 1년간 여러 부서의 프로젝트들을 하다가, 나를 원하는 부서에 채용되는 시스템이었다. 첫 프로젝트가 약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인 부형제 하나의 시장성을 조사하는 거였는데, 나름 잘한 거 같다. 그 팀에서 6개월 후 글로벌 마케팅 포지션을 오퍼 받았으니. 자존감은 바닥이었으나 일로는 인정받는구나 생각했다.
그날도 우리 팀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나를 뽑아준 우리 팀의 마케팅 디렉터가 한 직원을 어떻게 자를지 얘기했다. 일을 잘 못해서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지 팀원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때 정말 놀란 건, 그 직원은 내 옆자리 사람이었다는 것과 이 얘기를 1년이나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직원도 이 일을 알고 있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속으로 많이 당황해하며 회의를 마쳤다. 다음 날 그 직원을 떠보니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당사자는 전혀 눈치 못 채다가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구나.’라는 두려움은, ‘이 직장 사람들이 내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의구심으로, 마지막으로 ‘내 상사를 절대로 믿을 수 없겠구나’라는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당시 내 영어는 유창하지 못해서, 미팅을 해도 벙어리였으니, 내가 일을 잘한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미국인도 저렇게 자르는데, 말도 잘 못하고 비자까지 지원해야 하는 외국인인 나도 언제든 자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많이 괴로웠다. 회사 직원들은 드셌고, 나는 말을 못 했고, 자신감은 점점 없어졌다. 일을 못하면 해고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년간 나만 모르는 해고 얘기가 있을 수 있겠다 생각하니, 회사 사람들이 말 못 하는 내 험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32살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계속 기도를 했다. 한인교회 사람들에게도 이 고민을 얘기했으나 풀리지 않았다. 회사는 가기 싫었고, 사람들은 뒤에서 내 욕을 할 것만 같았다.
3개월을 두려움의 지옥 속에 산 어느 날, 나에겐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사는 것과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잘리면 그때 걱정하는 것. 후자가 낫겠다 싶었다. 적어도 잘릴 때까지는 행복할 테니까. 그러다 갑자기 ‘아 자르고 싶으면 자르라 그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으대로 살아야겠다. 당당하게.’
잘리면 그때 가서 걱정하겠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너무 후련해졌다. 그리고 안 잘릴 수도 있지 않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3개월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고민하고 기도한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고민하고 얻어낸 결론이니까. 이 일 이후로 일어나지 않은 일로 걱정하며 내 오늘을 망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바뀌었다. 혹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 최선을 다해 해결하겠다고 결심했다.
갑자기 회사 생활이 가벼워졌다. ‘그래 뒤에서 내 욕할 거면 얼마든지 해라. 자를 거면 얼마든지 잘라라. 난 내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