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MBA를 하기로 결심하다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by 켈리황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몇 번을 포기하고 싶었다.


첫 시련은 GMAT이었다. 학원과 도서관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재미있었고 영어도 할 만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덕동으로 시험을 보러 갔다. 첫 점수는 550점 정도로 기억한다. 그 당시 700점을 넘어야 미국의 Top 10 학교를 갈 수 있었다. 처음이니 그럴 수 있다고, 조금 더 하면 될 거라고 믿었다. 잘못된 믿음이었다. 6개월이 지나도 점수는 여전히 600점대였다. 공덕동에서 잠실까지 오는 지하철에서 내내 울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답답했다. 입학 원서를 쓸 때까지 계속 시험을 봤다.


두 번째 시련은 돈이었다. 아직 MBA를 시작도 안 했는데, 숨만 쉬면 돈이 필요했다. GMAT 시험을 볼 때마다, 입학원서를 위한 컨설팅을 받기 위해, 입학원서를 낼 때마다. 부모님께서 반대하는 유학이었으니,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50 만 원을 친구에게 빌리고는 한참 울었고, 신용카드 대출을 받고 나서는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돈이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여러 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미국 MBA는 학비와 생활비로 1년에 1억 정도가 필요했다. 이제 고민은 학비였다. 당시 내 전 재산은 약 8천만 원이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으로 MBA를 하러 가는 게 맞는지. MBA를 해도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데, 이 큰돈을 들이는 게 맞는지.


원서를 낸 후 뭘 또 할 수 있을까 싶어, 미국에 가서 여러 학교의 입학 사정관들도 만났다. 돈이 없어, 싼 모텔에 묵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29살의 나는 돌아가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그래, 일단 부딪혀 보자. 1년 하고, 방법이 없으면 돌아오자. 또 돈을 모아 2학년을 다니자.’


여러모로 두려운 마음으로 합격 발표를 기다렸고, 원하던 University of Michigan에 합격했다.


정말 기뻤다.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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