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부제: 나, 잘한 걸까?)
잘 적응하던 스위스 직장생활이 바뀐 건 글로벌 영업 디렉터 (Global Commercial Director)가 새로 오면서부터였다. 당시 우리 조직은 사장 (General Manager) 아래 영업, 마케팅, R&D, Asset (공장) 디렉터가 있었고, 내 상사였던 캐롤(가명)의 영향력은 아주 강했다. 마케팅이 전략을 세우면 다른 조직은 실행하는 식이었다. 입사한 지 6개월 정도 됐을 때 영업 (Commercial) 디렉터가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인도인이었던 그분은 열심히 일했고, 캐롤과도 관계가 좋았다.
1년 후 그분은 돌아가셨고, 잭(가명)이 글로벌 영업 디렉터로 우리 부서로 왔다. 이때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잭과 캐롤의 싸움이 시작됐다. 잭은 영업이 조직을 이끌고, 마케팅은 영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마케팅의 모든 것들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같은 네덜란드 출신 마케팅만 일을 잘한다고 칭찬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 당황했다. 영업팀도 갑자기 전략을 세우고, 총대를 메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니 힘들어했다.
하루는 유럽 영업팀과 마케팅이 다 모인 워크숍에서 (안타깝게도 캐롤은 없었다), 마케팅 팀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남자 동료가 공격 대상이 됐다. 영업팀도 마케팅팀도 모두 당황해서 누구 하나 입을 열 수 없었다. 입사 후 나를 정말 많이 도와줬던 동료였고, 얼마나 좋은 사람인 줄 알기에 나서서 반박했다. 속으로는 많이 떨렸다. 나보다 상사이고, 말로 이기기 어려운 사람에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대들어야 했으니. 대들다가 나까지 혼나고, 잭은 조직은 마케팅이 아닌 영업이 이끌어야 한다는 말을 하며 회의를 마쳤다. 분한 마음에 우리는 캐롤에게 이 일을 전부 일러바쳤다.
다음 날 출근하니, 잭이 불편해 보였다. 어제 얘기가 GM까지 올라갔고, 캐롤과 한바탕 싸운 모양이었다. 이 사건 이후 잭은 예전처럼 대놓고 마케팅을 비판하지는 않았으나 마케팅과 영업의 묘한 긴장감은 지속됐다. 다행히 나와 잭과의 관계는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워크숍에서 대들었던 게 효과적이었지 싶었다. '쟤, 함부로 건들면 막 대들겠구나' 했나 보다.
부서 간 싸움이 계속되던 어느 날, 캐롤이 다른 비즈니스 유럽 GM으로 발령이 났다. 놀람과 동시에 우리는 우리 중 하나가 캐롤의 후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잭에게 7명 지역의 영업 매니저 (Regional Commercial Manager)가 보고를 하고 있었고, 마케팅 디렉터였던 캐롤에게 6명의 마케팅 매니저가 보고했었는데, 캐롤이 나가면서 잭에게 영업과 마케팅 전권이 주어졌다. 잭이 원하는 대로 됐다. 잭은 조직을 개편해서 일곱 지역으로 쪼개져있던 글로벌 영업을 북미, 남미, 유럽/중동, 아시아 네 개로 통합했다. 개편 전 아시아는 중국/대만, 한국/일본, 동남아, 인도/스리랑카의 네 지역이었는데, 이를 한 지역인 아시아로 묶은 것이다. 마케팅 조직도 직접 보고라인을 6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잭은 나를 부르더니 아시아 영업 헤드를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당시 장기 커리어로 GM을 원했던 내게 영업과 사람 관리 경험을 동시에 쌓을 수 있다면서. 직접 보고 라인 4명의 영업 매니저 포함 영업팀과 기술지원팀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두 단계 승진도 시켜준다면서. 어려운 결정이니 시간을 달라고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케팅을 못 해서 영업으로 보내나? 거절은 할 수 있는 건가? 무엇보다 스위스에 정들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올 수 있을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인사 전무가 전화를 했다. 기회가 왔을 때 결정을 못 내리는 이런 모습은 내 커리어에 도움이 안 된다고. 다른 선택이 없고, 빨리 받아들이라는 얘기였다.
잭에게 하겠다고 얘기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잭은 무척 기뻐했다.
주사위는 또 던져졌다. 7년 반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로. 고국으로 돌아가는 건데 왠지 불안했다.
'나, 잘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