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인간에서 육식인간으로

좌충우돌 글로벌 인재 되기

by 켈리황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마케팅, Product Director를, 한국에서 아시아 영업 총괄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글로벌 인재가 되는 방법을 적을 예정입니다.


서울로 돌아와 처음 든 생각은 먼저 건강을 회복해야겠다였다. 평창에서 눈앞이 환해지고 머리가 또렷해진 경험을 하니, 몸을 그 상태로 끌어올려야겠다 싶었다. 우선 6시에 일어나는 걸 그만 했다. 자고 싶을 때까지 자는 걸로. 당시 밤에 회의가 많아 1 -2 시에 회의가 끝나도 6시에 일어났었는데, 그걸 내려놨다. 몇 시간 잤는지는 그만 생각하고, 내 몸이 개운해졌을 때 일어났다. 그랬더니 밤에 회의를 하면 8시에도 일어났다.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했더니 교회 친구가 팔체질 한의원에 가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담당 목사님도 다녀오셨다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한의원에 갔다. 참고로 당시 내 몸 상태는 방전된 배터리였다. 한의사가 맥을 짚더니 내가 토양인이라면서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요가를 4년째 하면서 음식도 잡곡, 샐러드 소위 건강식을 계속 먹고 있었다. 건강식도 영양제도 먹는데 늘 피곤했다. 한의사는 내 체질은 단백질이 필수이고, 잡곡도 몸에 안 좋단다. 쌀도 백미를 먹어야 한다고.


고기를 먹으면 속이 너무 부대껴서 싫다고 하며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한의사는 그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데, 햄 5장, 치즈 5장을 넣어서 하루 세 끼 먹으라고 했다. 속으로 ‘이 사람 돌파리네. 참 나를 바보로 아나보다.’ 생각했다. 침을 맞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파리였다. 건강음식을 먹지 말고 햄치즈를 5장씩 먹으라고?


납득이 안 갔지만 2주만 해 보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2주 동안 햄, 치즈 각각 5장씩 들어간 샌드위치를 하루 세끼 먹었다. 질릴 때는 근처 식당에서 갈비탕이나 불고기를 먹으며 하루 세끼 단백질 식사를 2주간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몸에 힘이 났다. 처음 느낀 몸 상태였다. 온몸에 힘이 꽉 차는 느낌.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은 느낌. 겨우 2주 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몸 상태가 그렇게 좋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껴 봤다.

생활 패턴을 바꿨다. 아침 6시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하는 삶에서, 내 몸이 원하는 때 일어나고, 건강식이 아닌 단백질을 많이 먹는 삶으로.


점점 힘이 넘쳤다. 얼마나 넘쳤다면 한 달쯤 후, 사무실에서 이메일을 쓰다가 팔을 한번 뒤로 뻗었다 앞으로 움직였는데 셔츠 팔 부분이 쭉 찢어졌다.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셔츠는 찢어졌는데 그냥 기분이 좋았다. 힘이 넘치는 원더우먼이 된 거 같았으니까.


3개월 후 아시아 리더십 팀 모임에 참석했다. 내 발표 순서가 되니 중국 영업전무가 늘 그랬듯이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이건 저렇고, 저건 이래야 하고, 직원들이 불평하고…일 년 내내 내게 그랬으니 놀랄 것도 없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다. 전에는 그 사람이 내게 뭐라 하면 괜히 주눅이 들었었다. 내가 정말 잘 못한 것 같고. 그런데, 이번에는 그 사람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주눅 들지도 않았다. 당당하게 “그래, 그럼 네 설루션은 뭔데? 문제를 제기할 때 방법도 있겠지? 네 방법을 뭔데?” 중국 전무는 놀란 듯 보였다. 처음이었으니까. 속으로 ‘쟤 미쳤나?’ 했을 거다. 움찔하더니 딱히 방법은 없단다. 이런이런. 자기 발등을 찍은 거다.

발표를 이어가는 데 또 딴지를 건다. 이제는 그 사람이랑 친한 다른 사람도 내게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내내 전장에서 전투를 하는 느낌이었다. 희한하게 전에는 엄청 주눅이 들고, 내가 잘못한 것 같았을 텐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틀린 딴지는 과감히 물리쳤고, 맞는 딴지는 당당히 수용했다. 내 발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몰려왔다. ‘너 정말 대단하다. 잔다르크 같았어.’ ‘그 사람들 괜히 딴지 거는 건데, 그걸 그렇게 맞서는구나.’ 그날 저녁, 영업 전무들이 내게 와서 악수를 청했다. ‘다시 봤다. 너 정말 세다 (You are so strong). 이제 우리 팀이네.’


드디어 장애물 하나를 넘었다는 걸 느꼈다. 게임에서 한 레벨이 올라간 느낌이었다. 여담으로, 당시 중국 영업전무는 내가 물량을 다른 나라에 많이 주고 중국에 적게 줘서 싫어한 것이었다. 아시아 물량은 한정적이고 중국 가격은 낮아 다른 나라들에 우선순위를 뒀는데, 그게 맘에 안 든 것이다. 다른 PD (Product Director)들은 눈치껏 적당히 중국에 물량을 줬는데, 눈치 없이 나만 안 주니 싫었던 것이다. 겉으로 뱉은 말과 속마음이 달랐는데, 그걸 난 나온 말만 따르려 애썼으니.


몸에 힘이 생기니 사람들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뭐라 하면 취할 건 챙기고, 버릴 건 들은 척도 안 했다. 몸에 힘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강력한지 느끼게 되니, 요가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D는 하루에 여러 번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아시아 내에서는 영업사원들과 가격으로 싸우고 (영업은 더 낮은 가격을, 나는 더 높은 가격을), 글로벌에서는 아시아로 물량을 더 받아오기 위해 다른 지역 PD와 매일 싸워야 했다. PD 일에는 정적인 요가보다 순간적인 힘을 쓸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복싱을 시작했다. 복싱은 재미있었다. 준비운동으로 줄넘기를 15분 하는 건 힘들었지만, 강사랑 스파링 하는 게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스파링을 하며, 이건 중국 영업 전무야, 이건 유럽 PD야 라고 생각하며 마구마구 때렸다. 강사가 정말 잘한다고 했다. 이유는 몰랐겠지만 ㅎㅎ.


더 이상 사람들이 무섭지 않았다. 유럽 PD가 어느 날 나랑 통화를 하다 ‘너 변했다’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그 사람 논리에 넘어가 물량을 고스란히 뺏겼는데, 예전의 내가 아니었으니.


PD 일을 잘하기 위해 내겐 힘이 필요했다. 순간적으로 잽을 날릴 수 있는 순발력도. 잠을 충분히 잤고, 고기도 많이 먹고, 복싱도 계속했다.


6개월 동안 셔츠는 한 번 더 찢어졌고, 바지도 찢어졌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더 이상 사람도 일도 두렵지 않았으니까.


이 경험 이후로 나는 일의 성격과 몸상태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정적이고 고요한 게 필요하면 요가와 명상을 하고 음식도 가볍게 바꾼다. 힘이 많이 필요한 일이면 고기를 먹고 동적인 걸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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