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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황 Apr 12. 2022

유병장수가 누구에게 좋을까?

병원 일기 

어머니 정밀검사를 위해 대학 병원에 입원한 1일 차. 비록 치료가 아닌 검사를 위한 입원이기에 마음이 덜 불편했지만 입원 보호자로 온 건 처음이기에 괜히 떨렸다. 


5인실 병실 창가 자리에 세팅을 하고 그제야 다른 환자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일단 네 분 모두 거동이 불편하셔서 혼자 움직이실 수 없고, 세 분은 호흡도 불편하셔서 보호자들이 몇 시간 간격으로 가래를 빼드리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입원을 시켰을까, 어머니가 괜히 더 우울해지시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검사만 하니까 라는 괜한 안도와 자만까지... 참, 나도 한참 더 커야 한다. 


이제는 보호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1인만 허락이 되는 상황. 모두 여자다. 앞 침대는 보호자는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고, 다른 보호자들은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더 오래 있어 친해진 것 같은 보호자들끼리 농담을 한다. 

"보호자가 다 딸들이네. 아들 보호자를 못 보겠어. 요즘엔 아들만 있으면 병원에 혼자 와야 한대." 


그러고 보니 다 여자다. 간병인인지 딸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를 시작한다. 심전도, X-ray, 인지 기능 등등. 검사실에 모셔다 드리고 시간이 걸리는 긴 검사를 받으시는 동안 커피를 사 들고 밖으로 나가본다. 그때 알았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둡다는 걸. 보호자의 얼굴이 모두 어두웠다. 한숨을 쉬며 지나가는 여자분을 보며 어머니 병실 안 환자분들이 떠 올랐다. 


"유병 장수는 누구에게 좋을까?" 


누구에게 좋을까? 치매를 7년간 앓고 대부분의 시간을 요양병원에 계시다 올해 돌아가신 큰 어머니에게 좋았을까? 간병을 하시다 돌아가신 큰 아버지에게 좋았을까? 어머니를 생각하며 늘 울던 사촌 언니에게 좋았을까? 


요즘은 암은 너무 흔하고 암과 같이 사는 고령사회라 하는데, 그 말이 전혀 반갑지 않다. 환자는 얼마나 괴로울 것이며, 보호자들은 어떤가? 치매는? 파킨슨은? 루게릭은? 뇌졸중은? 


고혈압이나 당뇨라면 모를까 중증 질환 어느 하나 누구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검사를 마치고 입원실에 돌아왔다. 옆 침대에서 얘기 소리가 들린다. 


"나 밥 줘." 

"방금 드셨잖아." 

"언제 줬어? 네가 나를 굶겨 죽이려고 하는구나." 

"알았어. 오징어 드릴까?"


치매 할머니와 딸의 대화였다. 


회진 온 의사가 묻는다.

"할머니, 식사 잘하셨어요?"

"안 먹었어. 딸이 밥을 안 줘." 


마침 자리를 비운 딸을 대신해 다른 보호자가 대답한다.

"할머니, 방금 식사하셨잖아." 


치매 할머니는 의도치 않고 계속 웃음을 주셨다. 삼일째 변을 못 봐 관장을 한 후 기저귀에 대변을 보라는 딸의 말에 할머니는 정신이 드셨나 보다. 

"지금 뭐라고 했냐?" 

"그냥 똥 싸시면 된다고." 

"얘가 미쳤나 봐. 무슨 말이야. 어디다 똥을 싸?" 


결국 포기하시고 똥을 기저귀에 똥을 싸시는 할머니 옆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 퇴원이면 집에 엄마랑 나랑 둘이 있어야 하는 데, 에고 잘 지낼 수 있을까?" 


혼잣말이 밖으로 나왔나 보다. 


웃음을 크게 주셨던 치매 할머니는 다음날 퇴원하셨다. 계속 배고프다 하셔서 체중이 나갈 줄 알았던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는 걸 도와드리는 데 너무 마르셨다.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고 입에 물고 주무셔서 딸에게 혼다던 할머니였는데, 이렇게 마르셨구나 싶었다. 


자꾸 생각이 든다. 유병장수가 누구에게 좋을까? 그래도 오래 사시는 게 더 좋은 걸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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