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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lan Gyeong Jul 05. 2022

여자들의 팽팽한 신경전

어머님 사랑합니다.

요즘은 시댁에 가도 어머님께서 안계신다.

전화를 드려도 잘 안 받으신다.

나의 고민은 깊어진다.



선배 며느리 권씨:

 들이 받아라. 굽히지 말아라. 하고 싶은 말 꼭 하고 살아라. 손주 못보면 누가 답답하고 누가 아쉽겠니?


선배 며느리 김씨: 시부모님께 싫은 소리 하지 말고 적당히 앞에서는 네~네~ 하고 뒤돌아서 막상

못 간다고 말씀드려라. 남편을 항상 이용하되 남편과 싸우지는 말아라. 남편은 네 편이야.  


키워준 엄마 : 일을 그만두고 네 자식 네가 키우고 싫은 소리 듣지마라.

 다음에 일을 시작하면 더 멋지고 근사하게 해서 더 멋진 네가 되면 되는거야.


낳아준 엄마 : 네가 나중에 네 아들 결혼해서 내 보내면 넌 안 그럴 수 있겠니?

                 모쪼록 시부모님께 고분고분 잘 해드리고 잘 맞추어드리렴.





우리 시어머님은 내가 태어나서 만나뵌 60대 여성분 중에 우선 가장 미녀이시고, 정말 소녀같으시고

사랑스러운 분이다. 처음 인사하러 방문드린 날 팔벌려 나를 안아주시며 어서와 혜란아~ 보고싶었어~ 라고 환영해주셨다. 할리우드 어머님이랄까? 전화끊을 때 그래~ 사랑한다~ 라며 사랑을 나누어 주시던 어머님!


임신했을 때 시댁에 친척어르신들께서 모이셨어도 들어가 한숨 자라고 배려해주시고, 시댁에서 설거지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김밥도 싸서 전해주셨다. 내가 이렇게 감사한 어머님,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서 나도 변하고 어머님도 변하셨다!




 친정 엄마 아빠와도 한 달에 전화 몇 번 할까 말까하는 그런 독립적인 가정문화 속에서 20년 이상을 살아왔던 나에게 어머님께서는 임신 막달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안부전화를 나에게 걸어와주셨다. 내가 안부 전화를 드려야 할 텀이 돌아오기도 전에 먼저 항상 전화를 주시니 더욱 죄송했다. 감사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어르신을 대할 때 선별하는 예쁜 말투로 나도 모르게  공손하게 두 손모아 전화기를 받고 굽신 굽신하는 어깨각도가 절로 나오니, 점차 이건 진정한 내 모습이라기 보다는 공손한 며느리의 역할 수행이 되어갔다.

남편왈, 본인도 총각시절 어머님의 전화세례에 꽤나 징한 독립투쟁을 치르곤 했다고.



   너무도 사랑하는 아들의 아들이 태어났고 그 사랑스러운 손자를 화,수,목 대리 양육해주고 계시기에

아기가 태어나 100일로 향해가는 지금은 하루 3번 정도의 아이 컨디션 확인 차원의 전화가 이루어진다.

며느리는 시부모님께 남편 소식, 아들 소식을 나르는 중계자가 된어야한다. 남편과 아들에 대한 질문들 직후 통화는 어김없이 신속하게 종료되며, 내가 혹시나 몸이 힘들지는 않은지, 밥은 먹었는지 등과 같은 나와

관련된 소소한 안부는 전혀 담지 않는, 그런 생소한 일을 시작한지 이제 곧 100일이 되어간다.



출산 전 직장생활을 유지할 것인가, 사업을 정리할 것인가 고민할 때 직장생활 유지를 택했고 이에 따라

시부모님께서 우리 아이를 화수목 봐주시기로 했다. 차로 20분 거리, 어머님께서 운전해서 오시기가

버거우셨는지 아이를 매주 화요일에 데려다주면 두 밤을 재워주시고 목요일에 데리고 가라 하셔서 그리하고 있는 요즘이다. 나도 아이가 매일 밤 보고싶지만, 나의 일도 많이 사랑하기에 지금 감사하고 행복한 것 같다.


그런데 최근 불거진 문제는 시어머님께서 같은 아파트 동으로 이사오라고 거듭 거듭 말씀을 하신다는 것.

직접 오분거리의 주택, 같은 동에 잘 빠진 아파트 등 먼저 집을 보시고 꼭 우리 부부도 내일 아침 당장

집을 보러오라고 상의없이 시간약속을 잡으시고.. 이사 안간다는 우리 부부에 마음이 크게 상하셔서

전화도 안 받으시고 시댁에 찾아뵈어도 일부러 안 계시는 눈치다.


 화요일 수요일 엄마 얼굴 못보고 잠드는 아이가 가엾고 나중에 어린이집 등하원 케어도 잘 해주시겠다고

우리 사는 것만 생각하지말고 아이를 생각해달라고 하신다. 틀린 말씀 하나 없으시고 감사할 일이지만...

우리엄마랑 가까이 사는 것도 스트레스 받아할 내가 시부모님과 같은 동 아파트에 살아야한다고...?띠로리?




친정이고 시댁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는 나....

이런 내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아니아니, 며느리가 아니라 차라리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서운한 점은 서운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 반대하는 의견도 솔직히 말씀드릴 수 있다면

그러면서 감히 며느리가 따박따박이라는 생각 안 하실 수 있다면, 그럴수 있다면

비로소 그때쯤은 딸같은 며느리로 윗 층 아래층 살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투쟁하는 상대는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우신 어머님이 아니다. 착한 며느리가 묵묵히

따라야 할 성역할 그 자체. 20년 공교육은 남녀평등을 외치고 똑같이 혹은 그 이상으로 여자들도

고등교육을 받지만 결혼 후 출산 후 가족지도는 구시대의 그것에 머물러 며느리의 권력은 시부모님 아래,

남편아래, 그리고 내 아들 아래 어딘가 쯤 애처롭게 걸쳐 있는 듯 하다.



새로운 가족과 아직은 거리를 두고 싶은 내 자신.

( 오은영샘께서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하라고 말씀하실까? )

아이생각을 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인걸까?

진부한 고부갈등의 나락으로 빠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요구르트 트라이앵글  글로리...........

리어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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