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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May 27. 2024

사장과의 갈등과 내면의 부름

카센터와 에어컨

세훈은 새로운 회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늘도 일찍 퇴근했다. 주문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당찬 포부와 합리화로 이전 회사를 떠났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은 그를 괴롭게 했다.


일이 없는 회사에 붙어 있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코로나 시국에는 온라인 쇼핑몰 기반의 회사로 각광받았지만, 세훈이 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끝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사무실의 규모가 점차 축소되고 급여는 제때 들어오지 않으며, 사장의 형편이 어렵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세훈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잦은 이직으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세훈은 자신이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회사의 어려움은 현실이었고, 어느 순간 잘리거나 회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사실, 이 회사는 그가 원하던 곳이 아니었다. 이전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기회로만 여기던 곳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이 회사를 성장시키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 에너지는 이미 이전 회사에서 소진됐고,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회사생활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결론이 세훈의 발목을 잡았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무언가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사장이 무언가를 제안하면 그는 반론을 제기했고, 사장을 평가절하했다.


그렇게 세훈은 또다시 길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시절과 정식 직원이 된 후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알바 때는 특정 업무만 하고 바로 퇴근했지만, 직원이 되자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 보상도 없자 의욕을 잃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전 회사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해 납기일을 맞추고, 홈쇼핑 입고를 위해 납품 기준을 철저히 분석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때의 헌신이 떠오르면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이전 회사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즉흥적으로 그만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의 회사를 생각하면 선뜻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세훈은 이전 직장의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다. 동료는 회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세훈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물었지만, 동료는 회의적이었다.


세훈은 충격을 받았지만, 잦은 이직이 가져다준 결과라 생각했다. 이전 회사의 사장이 전화까지 한 상황에서, 동료의 충고가 오히려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결정적으로 세훈은 현재의 사장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단순히 급여가 적고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퇴사하는 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 여겼다.


이전 회사 사장과의 갈등과 내면의 부름


그렇게 세훈은 이직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며 두 번이나 그만둔 회사를 다시 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또한 시간이 조금 지나서 현재는 어느 정도 지난 일이 잊혀졌지만 특정 사건만큼은 여전히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에 그렇다.


그 특정 사건은 이러하다.


세훈은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카센터가 있다. 그 카센터는 세훈의 이모에게 소개받은 곳이며 평소에도 가족차를 점검하거나 수리할 때 이용하는 곳이다. 사기꾼이 판치는 세상에 인맥만큼 효과적인 곳이 없다고 판단했고, 몇 번 이용해보니 사장님도 일을 열정적으로 하시고 친절하게 응대하며 수리비도 적절하게 청구하는 듯하여 꽤 괜찮은 카센터라고 여겼다.


세훈은 회사차를 타고 다니던 중 차의 엔진오일을 교체할 때가 임박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엔진오일을 교체하겠다고 사장에게 이야기했고, 시간을 내어 교체를 하러 갔다. 항상 차를 가져오면 차량의 전체적인 문제점이 있나 없나 봐주는 카센터 사장이기에 차가 회사차 일지라도 세훈이 타고 다니는 차이기에 점검을 의뢰했다.


점검 결과 차량의 캘리퍼가 문제가 있기에 가만히 놔두면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어쩐지 세훈 또한 차의 브레이크가 좀 밀린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자신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라 여겨져 일단은 선조치 후 사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세훈은 사장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사장의 응대는 충격적이었다. "니 맘대로 회사차량을 왜 수리하냐"고 윽박을 지르는 것이었다. 당황한 세훈은 우선 사장을 진정시키고자 여러 설명을 했지만, 화가 난 사장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미 수리를 시작했고, 세훈 또한 고장 난 차를 끌고 다닐 수는 없기에 마저 수리를 요청했다. 그리고 세훈은 불안한 마음을 지닌 채 회사로 복귀했다. 대면을 하게 된 사장은 세훈에게 다시 타박을 했다. "카센터라는 곳은 오일이나 갈아줄 줄 알지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마치 세훈이 아무것도 모르니까 사기를 당했다는 식으로 훈계하였다.


사장의 말처럼 세훈이 사기를 당했을 수 있다. 하지만 세훈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사기를 치는 곳이었다면 자신의 가족, 이모 그리고 그와 관련한 사람들이 전부 당했다는 말이 되는데, 그건 아니라 생각했다. 또한 결정적으로 세훈이 차를 끌고 다닐 때도 분명 브레이크가 밀리는 느낌을 받아서 그와 같은 판단을 한 것인데 무작정 사기당한 거라 말하자 화가 치밀었다. 사장의 면전에 대고 화를 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참아내고 당장의 상황은 모면했다.


하지만 퇴근을 하고 친구들과의 술 한잔에서 그 같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울분을 토했다. "내 목숨이 달린 일인데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게 말이 돼? 차에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고쳐야 되는 거 아니야?" 등 푸념 섞인 말을 토해내며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다. 친구들 또한 세훈을 위로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은 채 집으로 귀가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사장의 아들이 수리한 회사 차를 가지고 여행을 갔다 온 이야기를 들었다. 장거리 여행에는 차량 정비가 필수다. 무사히 잘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세훈은 다시 한 번 감정이 상했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브레이크 문제로 사고를 당했을지 어땠을지 몰랐으며, 고마움조차 전혀 모른다 여겼다. 하지만 사람의 도리가 있는 이상 욕을 먹을지언정 수리하는 게 맞았다고 생각한 일화였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사장과의 마찰이 시작되었던 건지 모르겠다.


두 번째 일은 회사 에어컨과 관련한 일화다. 중고로 구매한 에어컨이 어느 날부터인가 시원한 바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로 인해 세훈은 에어컨 수리기사를 불렀고, 점검을 받았다. 에어컨 기사는 에어컨 내부 세척을 하면 찬바람이 다시 나올 수 있다고 조언을 했다. 그로 인해 세훈은 다시 에어컨 세척업자를 불렀고 정밀세척까지 완료했다. 하지만 여전히 에어컨의 찬바람은 나오지 않았다.


에어컨의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여러 의견이 많았다. 애초에 맞지 않는 평수의 에어컨이기에 안 나온다. 혹은 실외기 앞에 차량이 가로막아서 통풍이 잘 안 되는 게 원인이다. 혹은 에어컨 냉매가 없어서 그렇다 등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가뜩이나 더운 여름날 조치는 빨리 취해져야만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때 에어컨 기사가 파업을 했다. 전에 와서 청소를 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기사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다른 A/S 기사가 왔고 그 기사의 말로는 에어컨 냉매 부족이라 말했다. 냉매 충전 비용을 세훈에게 요구하고 이번에도 선조치 후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장은 화가 났다. A/S 기사의 점검 오류와 파업으로 인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지 않았으니 냉매 충전 비용은 못 준다는 것이었다. 세훈에게 이같은 사실을 말하고 다시 얘기하라고 화냈지만 세훈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자 이내 사장이 직접 A/S 콜센터에 전화해서 난리를 쳤다. 결과적으로는 고객의 성화에 못 이겨 무료 충전으로 결말이 났다.


그리고 얼마 후 에어컨은 또다시 고장났다. 애초에 중고제품 에어컨이었고 작업 환경 또한 먼지가 많기에 쉽게 고장이 나는 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세훈은 에어컨 수리비 몇 푼은 아끼면서 본인과 사장 아들 와이프는 보란듯이 비싼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꼈다.


이와 같이 뇌리에 깊이 박힌 사건들이 떠오르자 세훈은 이직을 포기했다. 자신도 꽤 오랜 기간 그들과 함께했던 정든 기억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슴이 답답한 상황이 또다시 연출될 것이라 생각되자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을 다잡고 세훈은 현재의 회사에 좀 더 열정을 가지고 일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직도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보려 한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결심을 굳혔다.


다음화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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