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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un 02.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토요휴무"

회사의 입장과 기사들의 생존

오전 6시에 출근했다. 원래 항상 출근하는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현장이 소란스러웠다. 지난 재계약 이슈에 이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있길래 그런가 싶었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란의 이유는 토요일 배송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토요일은 보통 회사가 쉬기 때문에 배송을 하지 않는다. 물론 출근하는 회사와 하지 않는 회사를 구분해서 배송하기는 한다. 처음에는 어떤 회사가 쉬는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에 구분해서 배송한다.


하지만 토요일에는 대부분의 회사가 쉰다는 전제하에 배송을 하지 않고 월요일로 미룬다. 물론 생물이나 음식, 혹은 급한 제품들은 제외다. 회사나 공공기관은 토요일에 배송을 받지 않기에 월요일로 미루는 것이다. 사람이 없으니 배송을 가도 전달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토요일에 배송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토요일에 배송하지 않은 제품을 화요일이나 수요일까지 가지고 있다가, 다수의 물량이 되면 한꺼번에 배송하는 것이다. 당연히 고객의 클레임이 발생하지만, 기름값과 시간을 아끼려는 사람들에게는 남 일이다.

또한, 물건을 스캔하지 않아 추적이 불가능하게 만들다가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다. 클레임이 들어오면 회사는 그 물건을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해야 했다. 결국 고객 클레임으로 인해 서비스 지수가 떨어지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와 같은 일을 방지하고자 앞으로는 토요일에 오는 모든 물건에 대해 스캔 작업을 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 얼핏 들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사들에게 있어 스캔 작업은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온다는 각서를 쓰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 물건에 문제가 발생하면 기사들이 무조건 엮이게 되는 점이 기사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추가적으로 토요휴무를 가장해서 난코스 지역이나 고가의 제품, 혹은 착불 제품을 배송하지 않고 다음주로 넘겨버리는 행위도 스캔 작업이 이루어지면 어려워진다. 재계약을 앞두고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배송하지 않았는지가 전산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이고, 원칙적으로는 회사의 지침이 맞다. 하지만 그동안 그렇게 해온 기사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다. 그로 인해 배송 시간이 늘어나고, 원래 하던 코스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일을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다들 나름대로 최적화 작업을 해놓은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로 인해 서로 수군대며 앞으로의 일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이외에도 계단이 없는 아파트 일대를 배송할 때는 다수의 일괄 문자 전송을 하여 경비실이나 우체통에 보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도 있다. 고객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기사의 입장에서 계단이 없는 5, 6층의 아파트를 배송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나는 모두 집앞에 배송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다음에 하게 될 기사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말에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고객에게 서비스한다는 마음으로 다 배송했다. 물론 가끔 힘들 때는 그렇게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온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몰라서 원칙대로 하는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뭘 잘 모르니까 원칙대로 하는 거라며 비웃을 수도 있다." 혹은 "그렇게 해가지고 얼마나 택배 배달일을 할 수 있겠냐"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사실 가끔 몸이 쑤실 때도 있고 무릎이 아플 때도 있다. 그러니까 다들 다 해보고 우리도 그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하는 말일 터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여태껏 해온 결과가 이번 재계약에 해고 사유로 등장한 이유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노조에서는 해당 조항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지만, 원칙대로 하면 생기지 않는 일이 분명하기에 삭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회사는 개인을 믿고 그러한 조항을 넣지 않았지만, 결국 그들은 그것을 악용했고, 그러한 것이 서비스 지수를 나쁘게 만들어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회사로서는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르겠다.


점점 타이트하게 조여지는 조항에 기사들은 숨이 막힐 것 같은 상황이 되어간다. 그나마 조금 숨을 쉴 수 있게 만든 편법들도 점차 사라짐에 따라 구역에 대한 공정성, 수량에 대한 불만이 더욱 고조되어 간다. 원칙은 지키는 게 맞지만 기사들이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를 조금 이해해 줬더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원칙을 모두 지키며 배송하면 적절한 시간에 끝나지도 않고, 돈도 안 되고 내 몸은 망가질 뿐이다. 그러한 와중에 강제적인 스캔 압박은 기사들의 숨통을 옥죈다.


생존을 위한 기사들의 사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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