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건 Jun 06.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착불"

"착불 시스템의 고충: 개선이 필요한 현실"

태양이 뜨거워서 능률이 떨어진다. 바람은 선선한데, 빛이 강렬해서 차 안은 뜨겁다. 에어컨은 잘 작동하다가 갑자기 시동을 켠 후 30분 정도 지나야 시원해진다. 정비는 무료지만, 당장의 더위 속에서 답답함이 커진다.


아직 무더위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동료들이 힘들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택배기사는 여름 휴가가 없다. 휴가를 가려면 동료들에게 자신의 구역을 맡기고 가야 한다. 그렇게 맡기고 가면 당연히 수입은 없다.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돈을 포기하고 떠난다. 하지만 대신 해줄 사람이 없으면 휴가는 불가능하다. 다행히 내가 온 후로 우리 팀은 휴가 계획을 잡는 것 같다.


덕분에 내 달력에는 용병으로 일하는 날이 많아졌다. 용병을 뛰면 생각보다 좋다. 좋은 구역을 맡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가는 곳은 아무리 배송하기 좋은 곳이라도 생소하기 때문에 어렵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시간 대비 효율이 좋기 때문이다. 하루 용병을 뛰면 평일 하루 일한 것보다 수량이 더 나오기 때문이다.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 가장 좋은 곳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회사의 물량 제한 정책으로 인해 시위를 하고 있지만, 나는 적은 수량을 메우기 위해 용병을 뛴다. 이렇게라도 해야 한 달 적정 수량을 채워서 생활할 수 있다.


내가 용병을 자주 뛰니까 한 동료가 자신의 물량을 조금 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자기 구역의 배송 시간이 오래 걸리고 혼자 배송하느라 지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물량을 줄여서 부담을 덜고자 한 것 같다. 나는 그 물량을 받아도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면 그 친구의 물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이후 팀장과 상의 후 다시 얘기하겠다고 했지만, 잘되지 않은 모양이다. 재계약을 앞두고 구역 조정을 전체적으로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다.


전에도 구역 조정 문제로 다른 동료가 팀장에게 문의했지만, 역시 없던 일이 된 것 같다. 아마도 회사의 계획 때문인 듯하다.


지난번에 언급한 개인별 물량 편차로 회사는 평균적인 수량을 유도하려는 것 같다. 현재는 한 달에 6천 개를 하는 사람도 있고 3천 개를 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 큰 편차에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라 하지만, 회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어차피 더 나빠질 구역이 없기 때문에 이번 조정으로 조금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 구역을 맡아 최적화해온 사람들에게는 그런 소식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무더위 속에서 일하다 보니 피로감이 두 배로 느껴진다. 중간에 물이나 음료수를 더 자주 마시게 된다. 한편으로는 여기서 더 더워지면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도 된다. 차 안에서는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지만, 밖에서는 더워서 짜증이 나기 쉽다. 고객의 전화를 친절하게 응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여러 번 전화를 받다 보면 감정이 목소리에 실릴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려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만, 사소한 일에 화가 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착불비를 계좌로 입금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한 경우다. 직접 와서 받아 가라고 굳이 시키면 속으로는 화가 나지만, 겉으로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수긍하는 내 모습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계좌이체를 할 줄 모르면 배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화가 난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어른들이 배움을 포기하고, 나이를 언급하거나 "내 핸드폰은 안 된다"고 말할 때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폴더 폰을 고집하는지, 다른 사람들은 현금으로 잘 받아가는데 왜 당신만 입금을 하라고 요청하냐면서 오히려 화를 낸다.


가끔 전산 오류로 인해 착불인지 아닌지 늦게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날씨가 덥고 햇빛이 강렬해서 괜히 사람을 만나 대화하기가 싫었다. 항상 웃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자를 보내 연락을 한 것이다. 대면해서 돈을 받는 것보다 쌓여 있는 물량을 처리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핑계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이 실상이다. 제품을 빨리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다. 왜 착불 하나 때문에 내 시간과 서비스를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같은 돈을 내는 것인데, 왜 달라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항상 "서비스로 해주는 것"이라는 말로 떼우기 일쑤지만, 이제 변화할 때가 왔다. 아예 착불 제도를 없애길 희망한다.


많은 기사들이 착불로 고통받고 있다.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구독과 라이킷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이전 16화 택배 배달일지 시즌2 "토요휴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