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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un 09. 2024

택배 배달 일지 시즌2 "휴무폭탄"

"택배 기사의 현실: 휴무일 뒤 물량 폭탄과 생존기"

휴무일이 있고 난 다음날은 일이 별로 없고 그 다음날에는 물량이 쏟아진다. 상차를 하는 사람들도 쉬기 때문에 다음날 물건이 올라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개념을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모른다. 하지만 이 단순한 개념은 생각보다 택배 배달을 하는 기사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공무원은 토요일, 일요일을 쉰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계약 배달원은 토요일도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목요일이 휴일이라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 답은 금요일은 한가하고 토요일은 폭탄을 맞는 상황이 온다. 하루치의 물량과 공무원이 빠져 해내지 못하는 물량 공세를 받게 된다.


그로 인해 평소 토요일 기준 300개 하던 사람들이 400~450개까지 수량이 급증하는 상황이 와버렸다. 많아진 수량 때문에 좀 더 틈틈이 물건을 적재해야 한다. 다 싣지 못하는 경우에는 분류장에 다시 들어와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일이지만, 늘어난 수량에 분류장에 들어오는 대형차량이 늦어지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배차가 늦게 되어서 차량이 늦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냥 물량이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늦어진 것 같은데 항상 그렇듯 인정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로 인해 첫 출발이 1시간 30분이나 늦어졌다. 늦어진 출발 시간만큼 끝나는 시간도 딜레이된다. 안 그래도 많은 수량에 더 일찍 나가도 부족한 판국에 더 늦게 나가는 일이 벌어지다 보니 모두가 신경이 예민해진다. 거기다 비까지 오는 상황이라 상황은 안 좋게만 흘러간다.


수량이 적을 때는 두 명의 물량을 한 명이서 처리할 정도로 적더니, 토요일 같은 경우에는 두 배로 물량을 줘버리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가용한 대기인력이라도 있으면 같이 할 텐데, 일하기 제일 싫은 토요일에 어디에서 인력을 구한단 말인가. 또 인력을 구한다 한들 그 값을 제대로 지불할 수도 없다. 결국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탁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냥 몸이 부서져라 배송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나는 형과 같이 하기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하지만 온전히 혼자서 배송하는 사람에게 이 상황은 지옥과 같다. 가끔 배송 전 출발 알림 메시지를 왜 안 보내냐고 따지는 고객들이 있다. 그 단체 메시지를 400명에게 보내게 되면 회신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되돌아온다. 원칙적으로는 보내는 게 맞지만, 실제 배달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러한 연락은 큰 부담이 된다.


운전하고 있는데 걸려온 전화는 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으니 문 앞에 두세요"라는 답변이다. 나름대로는 기사들에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하지만 400명 중에 10명에게만 전화가 와도 기사는 정신이 없다. 그렇다고 걸려온 전화를 무시하면 이번에는 고객이 화가 난다. 상호간에 도움되지 않는 일이다. 내가 볼 때는 그냥 물건을 받지 못했을 때만 연락하면 된다.


아무튼 그러한 연락을 뒤로한 채 400개가 넘는 수량을 어떻게 배달하라는 건지 이해가 어렵다. 기존에 암묵적으로 시행해 왔던 난코스 지역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착불건, 그리고 토요 휴무로 쉬는 회사 물건을 뺄 수 있던 관행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이제 계약서 상에 해고 사유로 넣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400개를 해야 하는데 위와 같은 구역을 빼지 않고 하루 안에 배송이 가능할까? 하물며 그런 날은 출발도 늦다. 현장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회사의 서비스 지수 상승만을 위한 강경책은 기사들을 사지로 몬다. 하다못해 가족이라도 동원하려면 평일에도 적정 수량이 보장되어 수익이 있어야 같이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돈이 되어야 같이 할 수 있다. 가족들이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떠나버리니, 홀로 남은 기사는 물건과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게다가 과로사 방지를 위해 오후 9시까지 배송을 완료해야 한다. 그 시간을 넘기면 사유서를 써야 한다. 특정 불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불편하다. 그로 인해 기사는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조항은 늘어가고, 몸이 부서져라 배송하는 기사들은 점차 야위어만 간다. 날씨도 덥고 비도 오고, 열악한 근무 여건과 높아만 가는 물가, 인상 없는 수수료 등 택배기사들 앞에 어려운 현실만 다가온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사들은 여전히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더 이해하고 배려해준다면,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개선의 여지가 있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좀 더 나은 상황이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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