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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un 16.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모임"

택배모임의 이면 : 갈등과 공존

택배 모임에 합류했다. 그동안 큰 사고 없이 택배 배송을 해왔고, 묵묵히 내 구역을 불평 불만 없이 배송했기에 초대된 것 같다. 모임 인원 중 나와 4개월 정도 근무 차이가 나는 동료가 나를 추천했다고 한다. 술도 잘 마시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며 일을 열심히 하기에 같이 모임을 하면 좋을 것 같아 팀장에게 추천한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도 텃세와 세력 다툼이 있다. 좀 더 좋은 구역을 배송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수익을 위해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임을 결성하는 듯하다. 이 모임은 팀장을 주축으로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 위주로 결성되어 있으며, 현재 우리 팀에 있는 나이 많으신 형님들이나 눈 밖에 난 친구들은 참여하지 않는 듯하다.


서로 간의 시기와 견제, 그리고 자신들의 세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서로 서로 도움을 주는 형국이다. 이 멤버에 나보다 한 달 전에 온 친구는 배제되어 있기에 의아함을 품고 물었지만, 그 친구의 성격상 의도적으로 참여시키지 않은 듯하다. 겉에서 보기에도 팀장과 그 친구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서는 그 친구의 불평불만이 결코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나와 비슷한 입장이기에 그의 입장표명을 강력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배송 구역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난코스 지역이며, 배송 물량 자체도 공장 단지들이 많아 무겁고 큰 물건이 비중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2만 원씩 걷는 월 회비의 지출 또한 납득하지 못하며, 자신들의 구역만 지키려 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많다. 특히 우리 팀을 관리하는 실장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한다.


또한, 경력 위주의 구역 설정은 그를 더욱 분노케 했다. 오랜 기간 버텨내서 얻은 결과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좀 더 공평하게 나누는 게 맞지 않냐고 이야기를 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각이나 결근도 없는 그를 단지 불평불만이 많다는 이유로 배제시키고, 앞으로의 배송 구역에 대해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아 버린다면, 그 친구는 오래 버티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곳도 조직생활이다.


이미 그 친구는 다른 일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 나는 그의 불평불만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하는 친구인 것 같은데, 그의 언행으로 인해 평가가 깎여버리는 형태다. 좋은 구역을 얻기 위한 그들의 혈투는 소리 없이 계속된다.


한 형님은 자신이 무릎이 안 좋아 일을 얼마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그 형님이 구역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팔려는 점이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팀장은 그와 같은 실태를 보고 있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형님의 입장에서는 그 구역은 온전히 자신의 구역이며, 자신이 그만두지 않는 한 영원히 자신의 자리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하다. 이것은 그 형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오래 배송을 하고 있어 그 자리에 고여버린 사람들의 문제다. 오랜 시간 차지해온 자리를 쉽게 내줄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막상 내가 그들과 같이 오랜 시간 배송을 해서 좋은 구역을 선점했다면, 과연 나는 그들과 다른 포지션을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배송하기 좋고 수익도 잘 나오는 구역을 그냥 눈 뜨고 통으로 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 불만을 표하지만, “네가 내 입장이면 그렇게 하겠냐”고 되묻는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답을 구하지 못했다.


과연 나는 아무리 오래 근무해도 구역에 대한 분배는 적절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5년, 아니 10년을 했는데 처음 들어온 사람과 비슷한 구역을 하라는 말을 나는 수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각종 세금과 내야 할 돈 앞에서 나는 돈이 되는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다.


‘난 돈이 필요 없으니까 어려운 구역은 내가 배송할게’라는 이타적인 생각을 하며 나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잘 안될 때가 많다.


이번 모임에서는 누군가에 대해 말하거나 구역에 대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친구에 대한 팀장의 말이 내 기분을 살짝 어긋나게 했다. 물론 팀장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묵묵히 일을 잘한다고 여겼지만, 술을 마셔보니 내심 불만도 있고 다른 팀으로 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구역 설정이 신입에게는 불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선가 오퍼가 온다면 이직을 해서 좋은 구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기에 그와 같이 불만을 표출하는 것 같다.


팀장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분명히 누군가는 그 어려운 지역을 배송해야 하고 그 사람이 해내지 못하면 자신이 배송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즉, 일 잘하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마음일 터였다. 혹여라도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 자신에게 이야기는 꼭 해달라는 게 팀장의 입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곳 팀장이 설정한 구역이 분명 어려운 코스이기는 하지만 내가 예전에 배송했던 구역보다는 나은 입장이다. 그래서 사실 아직까지는 아주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단지 더 좋은 곳이 있다면 내가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기에 그렇다.


택배 배달이라는 일이 단순히 건강과 밥만 먹고 살기를 희망해서 하는 일이었는데,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한 혈투에 어쩌면 이전 사회에서 했던 줄타기나 세력 다툼에 참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끝으로 그 불평불만이 많던 친구도 같이 함께 했다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컸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모임을 한다는게 조금 불편했다. 물론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냥 아쉬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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