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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un 23.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빗속의 택배"

퍼붓는 비

오늘도 휴가를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들의 물량을 대신 배송했다. 지원을 나가면 보통 좋은 구역을 하게 되고 물량이 많은 곳을 하게 된다. 가뜩이나 수량이 없는 요즘 같은 때에 단비 같은 일이다.


그러나 비가 이렇게 오래 내릴 줄 예상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기차게 내린 적은 내 경험상 없었다. 보통은 많이 오다가도 조금씩 그치거나 한 적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여겼지만 아니었다. 끝까지 비가 퍼부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건지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지원 수량을 줄일걸 그랬다.


비가 많이 오니 시야가 좁아지고 물건도 내 옷도 신발도 전부 젖으니 착잡해진다. 배송해야 할 수량은 많고 시간은 없고 몸은 무거워졌다. 또한, 물건을 분명 정확히 배송했는데 무작정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많은 건지 아쉬웠다. 무조건 못 받았다고 우기시길래 배송사진을 보냈더니 급작스럽게 태세 전환했다.


역시 이 나라는 증거 위주다. 사람의 말은 믿지 않고 증거는 믿는 세상임을 다시 한번 인지했다. 비가 많이 오니 후진을 할 때도 조심스러워진다. 백미러가 잘 안 보이니 더욱 신중을 기한다. 혹여라도 사고가 나면 오늘 일은 종치는 거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평소라면 오후 2시~3시면 끝날 일을 오후 5시 반이나 되어서야 끝나고 지원 업무를 그 이후에 하게 되니 오늘도 오후 9시 이전까지 배송 완료를 해야 하는 타임어택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후 5시가 넘자 빗줄기가 약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더욱 몸을 움직여 겨우 제시간에 배송을 끝냈다. 항상 그렇듯이 배송을 모두 완료한 순간만큼은 다행임을 느낀다. 오늘도 무사고로 배송을 완료했고 고객과도 큰 마찰 없이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비가 그렇게 많이 오는데도 굳이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언제 오냐고 묻는 전화였다. 당연히 언제쯤 오는지가 궁금하고 그때에 맞춰 볼일을 보려는 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조금 자제해 줬으면 싶은 게 사실이다. 제 물건은 아이스박스에 담긴 것이라 빨리 받았으면 한다. 제 물건은 식물이라 되도록 일찍 가져다주셨으면 좋겠다. 집에서 대기 중인데 언제쯤 오실까요? 등 배송하는 동안 고객들을 신경 써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빨리 받고 싶은 사람 마음 모두 똑같다.


아니 이럴 거면 퀵 주문을 하지 그랬나 싶었다. 물론 빨리 받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엄연히 정해진 코스가 있고 모두에게 빨리 가져다 줄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빨리 가져다 주려고 서두르다가 결국 오배송을 해버렸다.


동호수만 보고 다른 단지 물건을 배송해버렸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결국 사단이 난 것이다. 다행히 배송사진이 있어서 바로 확인이 가능했지만 문제는 그 물건을 찾으러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고객에게 바로 옆 단지이니 혹시 찾으러 갈 수 있겠냐는 요청에 고객이 수긍해서 직접 찾으러 갔지만 이미 집안에 가지고 들어가 버려서 찾지 못한 것이다.


벨을 눌러 달라고 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 정도의 아량을 베풀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오배송을 한 내가 문제이니 더 이상 고객에게 미룰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내가 직접 회수하러 가서 벨을 누르고 물건을 회수해서 다시 가져다줬다. 가보니 이미 그 집에서는 주려고 준비 중이었다.


배송을 잘못한 주제에 무슨 말을 하겠냐만은 많은 물량에 가끔 헷갈릴 때가 있다.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날씨가 더우면 집중력이 극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럴수록 더욱 집중을 하고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습관만이 사고를 예방하고 무사히 안전배송하는 길이다.


택배 배송을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는데 장시간 빗속에서 일을 해보니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지역은 안 그래도 비가 오면 더욱 배송하기 어려워지는 곳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오늘만큼은 저탑으로 지하주차장에 들어가서 배송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비가 많이 오니 물건에 매직으로 동호수를 크게 써놓기도 힘들고 트럭에 물이 자꾸 차서 고객들의 물건이 젖는 걸 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아무리 내 품에 비닐 포장되어 있다 한들 물에 젖은 제품을 가져다줘야만 할 때는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


이 비가 멈추면, 그리고 무거운 하루가 끝나면, 우리는 다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도, 맑은 날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택배 기사들을 기억해 주세요. 그들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우리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가 올 때는 전화 자제 좀 부탁드립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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