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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un 27.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각자의 생각'

구역조정

두 살배기 아이가 있는 동료가 육아 때문에 배정된 물량을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인접 기사인 내가 그의 구역을 대신 맡기로 했다. 나는 원래 물량이 적어서 이 조정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동료와 나는 협의를 끝냈고, 지역 팀장에게도 상황을 설명해서 구역 조정을 결정했다. 하지만 팀장은 현재 인계하는 구역이 지번이기 때문에 나중에 불만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지번을 많이 맡으면 나중에 구역 조정할 때 불리할 수 있다. 반면 아파트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도 동호수가 잘 구분되어 있고, 저녁에도 배송이 가능하며 효율이 높다. 아파트에 설치된 CCTV는 분실이나 오배송 확인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이유로 팀장은 형평성을 위해 구역을 균형 있게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팀장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지번을 대신 맡지만, 원칙적으로는 이 구역이 육아로 인해 구역을 내주는 동료의 것임을 명시했다. 이는 나중에 인원 충원이나 이동이 있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동료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팀장의 발언이 나중에 있을 구역 조정에서 팀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미리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팀장과 불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는 투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둘의 관계는 어떻든 내 입장이 중요했다. 내 입장에서는 아파트 구역을 맡는 것이 좋지만, 누구나 아파트 구역을 원할 것이다. 동료가 주는 구역은 내가 하던 번지의 바로 옆이라 물량을 늘릴 기회였다. 이 구역을 맡으면 한 달에 4천 개 하던 물량이 5천 개로 급증하게 되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동료는 자신의 물량을 줄이면 수익이 줄어들지만, 아내가 일하러 나가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육아 제도가 없는 우리 택배 계약 기사들은 물량을 줄이거나 구역을 변경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물량 균등 정책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구역 조정을 요청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 승인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승인되지 않으면 물량을 개인적으로 넘겨받아 처리할 생각이지만, 이는 번거로운 일이 될 수 있다. 많은 물량이 아니기에 상관없지만, 이는 회사의 정책에 반하는 일이다. 출산율 문제로 말이 많은 상황에서 육아를 위해 물량을 조절하려는 시도조차 승인되지 않는 현실이 아쉽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각기 다른 생각을 품고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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