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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건 Jul 04. 2024

택배 배달일지 시즌2 "비와 택배"

비와 배송의 일상: 육아와 일 사이에서의 사투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의를 챙기고 슬리퍼까지 준비했지만, 첫날에만 조금 내리고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다. 하지만 여전히 비가 올 것 같은 무더운 날씨는 계속되고 있다. 공기가 뜨거운 느낌이 지속되며, 곧 폭우가 쏟아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택배 배달을 하지 않았다면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비 오는 날이 두 배로 힘들어지니 차라리 비가 오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발을 신자니 비에 흠뻑 젖어 발병이 걱정되고, 슬리퍼를 신자니 바닥의 흙이 뒤섞여 발이 고통스럽다. 비가 적당히 온다면 그냥 신발을 신겠지만, 억수같이 많이 올 때는 차라리 슬리퍼가 더 낫다.


아무리 대비를 해도 힘든 건 마찬가지이기에, 차라리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아니면 차라리 쉬는 날에 비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비가 올지 모른다는 걱정을 뒤로 하고, 새로운 구역을 인계받아 배송을 시작했다. 처음 택배 배송을 시작했을 때처럼 낯선 구역에서의 배송은 많은 어려움을 동반한다. 카카오맵을 활용한 주소 찾기는 여전히 유용하지만, 초행길은 여러 번 돌아다녀야만 머릿속에 길이 그려지는 법이다.


이러한 점을 알기에 지역에 익숙해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의 뇌도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어하는 듯하지만, 자기최면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다.


같이 일하는 형은 비 오는 날 새로운 구역까지 인계받아 함께 일하다가 결국 지쳐버렸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컸을 뿐만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배달해야 한다는 점과 인계받은 구역이 허름하고 낡았다는 점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분명 인계받은 구역은 인접 지역이었고 신호 체계도 주황불이 많아 배송하기에는 용이해 보였다. 하지만 경사가 심하고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거나 한 번 들어가면 후진으로 나와야 하는 곳들이 많아 배송하기가 꺼려지는 지역이었다. 물량이 평균적으로 적어서 이 구역을 받게 된 것도 있지만, 구역을 인계해준 친구가 육아로 인해 자신의 배송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개인 사정이나 일정을 조절하고 싶다면 아파트 지역을 배정받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어려워하는 지역을 맡아 해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앞으로의 추세를 보면 대단지 아파트들은 회사에서 직영으로 배송을 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으며, 이미 직영 사원들이 초소형 비닐이나 작은 박스들을 배달하고 있는 상황이라 아파트 수량이 급감했다.


따라서 물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회사에서 관심이 덜한 곳을 배송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동료의 육아 때문이었다. 수량이 급감하면서 부인이 일하러 가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배송을 빨리 끝내고 아이를 돌보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우리는 계약 관계에 있기 때문에 육아에 대한 보장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이다. 아이가 두 살이 채 되지 않아, 그 친구는 고통을 감추려고 애쓰지만 눈 밑의 다크서클이 그의 힘겨움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처럼 보이지만, 육아로 인해 배송 수량이 줄어든 그 친구는 당장은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월급날이 되면 적어진 금액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팀장은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고 있지만, 본인이 선택한 일이기에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매번 병원 갈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차라리 수량을 급감시켜 배송을 빠른 시간 내에 끝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요즘처럼 물량이 줄어든 시기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구역을 받기 위한 그들의 사투는 계속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결국, 이 힘겨운 일상 속에서 서로를 돕고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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