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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싸움

by 대건

물량은 줄어들고, 동료들은 점점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회사는 적자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CJ의 주 7일 배송이 본격화되면서 그 여파가 곳곳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노조는 회사에 수수료 인상과 기본 물량 보장을 요구했지만, 이미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계약 택배원들의 신규 채용 공고가 사라졌다. 분위기는 어쩐지 누군가 그만두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사람들은 저출산 문제를 걱정하며 출산 장려 정책을 쏟아내지만, 정작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동료는 축하 속에서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쁨과 함께 묵직한 현실이 그를 짓눌렀다. 동료들은 그를 축하하면서도 속으로는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나라도 저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가정해 보지만, 당장은 아이들보다 나 자신의 생존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졌다.


이제, 지원 업무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평소 남의 구역을 지원하러 가지 않던 동료들조차 누군가가 사정으로 일을 못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먼저 나서겠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원 업무는 팀원으로서 약간의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돈 앞에서 하나의 수익 창출 기회로 변했다.


나는 아직 굳이 지원을 다닐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동료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동아줄처럼 보일 것이다. 그 역시 지원 업무를 달갑게 여기는 것은 아닐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앞에서 그는 결국 일하는 쪽을 선택한다.


타 팀의 팀장 또한 내가 평소 지원 업무를 자주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얼마 전, 다른 동료가 지원을 부탁했을 때 그는 오히려 자신이 나서겠다고 자청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이, 그는 "내가 대신 할게. 너도 힘들잖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단순한 배려만은 아닐 수도 있다. 수량이 더 필요했던 그가 자연스럽게 기회를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팀장이기에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 지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줘야 한다는 명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물량이 줄어들고 수익이 감소한 지금, 누군가의 이탈은 곧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되었다. 어느 동료는 그 동료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매번 지원을 부탁할 거면 차라리 구역을 넘겨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형님이 그렇게 하기에는 수량이 너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미 팀 내에서도 그의 물량은 적은 편이었고, 뒤에서 두 번째로 적은 수량을 배정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역을 넘긴다면 생활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단순한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결국, 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생존 방식이 바뀌고, 선택지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희생이던 지원 업무는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되었고, 팀장의 배려는 명분이 필요해진 일이 되었다. 누구도 원했던 변화는 아니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되었다.


한편, 나에게는 지원 업무를 누군가 대신해주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귀가 시간이 빨라졌고, 그만큼 내가 원했던 공부나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지역은 난코스라 수익 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집과 가까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필요할 시점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평소 회사 내부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형성된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번 모임에서도 주된 화두는 줄어든 물량에 대한 고민과 다른 팀으로의 이동 가능성이었다. 나는 다른 팀으로의 이동이 1순위이며, 자리가 나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팀의 한 동료는 가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거기나 여기나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했다. 오히려 현재 있는 팀에는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지금 팀이 집과 거리가 있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재 아무도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너무 일찍 마음을 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료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끼리라도 힘을 합쳐 세력을 만들고, 서로 도와주는 관계를 형성하길 원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역시, 나처럼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불합리함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때때로 이곳은, 오래된 구성원들이 자신의 지역을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전쟁터처럼 느껴진다. 유리한 지역만 선점한 채, 지속적으로 수익의 불균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불공평한 구조는 결국 하나의 팀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된다.


아마도 그 동료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라도 우리 같은 신입들이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 또한 그의 생각에 동의했고, 다음에는 다른 신입들과 함께 모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겉으로는 다들 순해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경계와 투쟁은 여전히 존재한다. 각자의 세력들은 서로 결속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우리는 아직 힘이 약하지만, 결국 이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돕고 길을 만들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싸움은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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