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일이 꼬였다.
택배 터미널에서 물건을 정리하는데, 쌀 포대 하나가 터져 있었다.
포대의 한쪽이 찢어져 하얀 알갱이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바로 파손 스캔을 찍었다. 찢어진 부위를 테이프로 막고, 재포장 비닐로 한 겹 더 둘러쌌다.
하지만, 아무리 포장해도 파손된 제품을 그대로 고객에게 보내는 건 문제를 일으킬 게 뻔했다.
주변 형님들은 "이런 건 반송시켜." 라며 조언했다.
나도 반송이 맞겠다고 생각하며 분류장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혹시 몰라 사고 담당자에게 확인했다.
"이런 건 그냥 반송하면 되죠?"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뜻밖이었다.
"임의 반송하면 나중에 문제 될 수도 있어요. 꼭 수취인한테 확인하세요."
…?
순간 기분이 씁쓸해졌다.
‘내가 배송하다 터트린 것도 아니고, 분류장에서 터진 걸 그대로 받은 건데…’
하지만 일단 절차대로 해야 한다.
나는 수취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바로 받았다.
""쌀이 터졌습니다. 내용물 일부 유실됐고, 재포장해둔 상태입니다. 원치 않으시면 반송 처리해 드릴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수취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아뇨, 반송시키진 마세요. 어쩔 수 없죠… 받도록 할게요."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후 배송을 마치고 퇴근해 쉬고 있는데, 송화인(보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단단했다.
"왜 파손된 걸 그냥 보냈어요?"
단 한 문장이었지만, 그 속에 불만과 화가 묻어났다.
"수취인께 확인하고, 사고 담당자에게 절차를 문의한 후 배송했습니다."
차분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상대는 이미 감정이 올라와 있었다.
"수취인이 받겠다고 하긴 했지만, 상태가 그 모양인지는 모르고 받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니, 쌀 터진 곳에 테이프 붙이면 오염될 수도 있는데, 그런 걸 누가 받고 싶겠어요?"
("이게 대체 왜 내 잘못이 되는 거지?")
"수취인이 받겠다고 한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오염될까 봐 일부러 새 비닐로 포장해서 배송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듣고 싶은 말을 들을 때까지 밀어붙이겠다는 듯했다.
"파손된 물건을 받았는데, 사과 한 마디도 없네요?"
"돈을 받았으면 제대로 배송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파손을 낸 게 아니다. 애초에 터진 상태로 온 걸 수취인이 받겠다고 해서 보낸 것뿐이다.
하지만 이 순간, 상대방은 내 논리가 아니라 ‘태도’를 문제 삼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절차대로 했습니다" 같은 말보다 "죄송합니다" 같은 한 마디가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XX야. 네가 배달하는 물건이 뭐라고 생각하냐?"
"사람 먹을 거잖아. 파손됐으면 반송해야지, 반성도 없이 그딴 식으로 배송하면 돼?"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 또 이런 유형이구나.’
억울했다.
수취인이 받겠다고 했고, 사고 담당자에게도 확인까지 했는데, 왜 욕까지 먹어야 하는 걸까?
"그럼, 수취인께 전화해서 따져보시죠. 저는 절차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더 거칠게 몰아붙였다.
"뭐? 네가 지금 뭘 잘했다고 그딴 식으로 말해?"
전화기 너머로 상대방의 분노가 확연히 전해졌다.
하지만, 이미 이 싸움은 감정의 싸움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싸움에서 이기려 들면 안 된다."
"더 이상 욕설이 계속되면 통화를 종료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수취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는 싸울 생각 없습니다. 송화인은 제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고객님이 받겠다고 하셨으니, 직접 해결해 주세요."
수취인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사고 처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파손 스캔을 찍었기 때문에, 내일 대표번호로 사고 접수하시면 보상 처리가 진행됩니다."
수취인은 알겠다고 했고, 송화인과 직접 해결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택배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때로는 고객을 위해 일하지만, 정작 그 고객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가장 힘들 때도 있다.
물건이 파손됐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기도 전에 무조건 택배기사에게 화를 내는 것.
사실 확인도 없이 "사과부터 하라"며 몰아붙이는 태도.
이런 것들이, 때때로 더 큰 갈등을 만든다.
물론, 서비스업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야 한다.
돈을 냈다고 해서, 모든 게 내 뜻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생각.
불만이 생기면, 원인을 따지기 전에 일단 화부터 내고 보는 태도.
이런 사고방식은 결국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피곤하게 만든다.
서비스는 '왕처럼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다.
감정이 격해진 싸움에서는 이기려 들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묵묵히 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일방적인 감정의 화살을 받아낼 생각은 없다.
서로 존중해야, 더 좋은 서비스가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