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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틴 시간이 아니라, 움직인 시간

by 대건

올해도 어느덧 저물어 간다.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아쉬움이 남는 순간들도 떠오르지만, 이내 '내년에는 더 나은 날이 오겠지' 하는 기대에 마음을 기댄다. 그렇게 사람은 또 한 번의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작년의 나는 기존 팀을 언제 떠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을 반복하며 하루를 보냈다. 불만이라기보다는 푸념에 가까웠다. 그러다 올해 9월, 결국 그 팀을 떠나 집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간절함은 현실이 된다. 다만 그 간절함을 지켜내야 했던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시간을 완벽하게 견뎌낸 사람은 아니었다.


이동을 위해서는 기존 구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수익도 줄어들었다. 줄어든 수익을 메우기 위해 이곳저곳 지원 배송을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하지만 지원 업무는 생각만큼 수익에 보탬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버스 운전을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스쳤다.


그렇게 지내던 중, 한 동료가 다른 사업을 시작하며 팀을 떠났다. 그의 자리가 비자, 마치 순서가 돌아온 것처럼 그 자리가 내게로 왔다. 수많은 경력자들이 기다리던 신규 단지의 자리였다.


누구나 좋은 구역으로의 이동을 꿈꾼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이동을 위해 남들이 기피하는 지역을 맡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도움을 청하는 수많은 요청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 시간들이 쌓여 간 끝에, 결과는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은 단순히 버텨낸 시간이 아니었다.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었다. 억지로 참기보다는 스스로를 단련하며, 이곳에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쉽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테지만, 그만큼의 흔적은 분명히 남았다.


반면, 자리에 대한 불만만을 늘어놓으며 손익 계산에만 집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 채 기다리기만 한다. 설령 자리가 생긴다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좋은 것을 원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부담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것은 선택이 아닌, 그저 정체된 시간뿐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나 역시 시간을 낭비하며 희생만 하던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세상 일이 원래 불확실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팀장과 대화를 이어갔고, 그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하나씩 감당해 나갔다. 비록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방식은 단순했다. 시키는 일은 우선 해내고, 그 후에 내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윗선에 차라리 자리를 떠날 수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알렸다. 그 순간 그들 역시 나를 계속 활용할지, 놓아줄지를 저울질했을 것이다. 다만 그 선택의 결과까지를 포함해, 나는 이미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응답했다.


이 모든 결과를 단지 내 능력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을 지속하려면 일정한 물량이 필요했고, 집과 가까운 곳에서 일해야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그 생각을 혼자 품지 않고, 말로 꺼내어 대화로 이어간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오래 일하기만 하면 윗선에서 알아서 배려해 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모든 것이 아무 일 없이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


말이란 것은 지나가는 투정이나 농담이 아니다. 면담을 청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더 높은 곳으로 소명을 올려야 한다. 나는 그렇게 했다. 그 선택이 지금의 결과를 만든 것이다.

결과론적일 수는 있겠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도 않은 채 팀장에 대한 불만이나 회사에 대한 불신을 마음속에 묻어두거나, 들릴듯 말듯 혼잣말로 흘려보내는 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당연히 면담을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조금씩 행동을 쌓아가다 보면, 그 기여가 결국 자리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그 점을 말하고 싶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속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회피 뒤에 숨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실패가 두려워 입을 다물고,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린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움직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요구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으로 나서는 일. 그 과정이 당장은 불안하고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결국 사람을 다음 단계로 이끄는 것은 그런 움직임이다.


나는 그렇게 이 자리에 왔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기 전에 한 번쯤 목소리를 내도 괜찮다는 작은 신호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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