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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Jun 03. 2021

1인 기업, 한 달 차

벌써부터 맘에 들어요..

사명을 정하고, 명함을 만들고, 사업자를 냈다.

근 한 달을 고심하여 선택한 2단 책장과 프린터기까지 새 가족으로 맞이했다.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오피스 용품도 추가했다. 일사천리였다.  

과거 읽었던 어떤 자기 계발서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일컬어 '액션 까기'라고 칭했다.

쉬운 말로 돈도 벌기도 전에 쓸데없는 것부터 신경 쓴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별도로 메모까지 해두고 충실하게 따를 심산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모든 걸 배제하고 일을 하려고 보니 제약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상상해보라. 잠재 고객을 대상으로 제안 미팅을 하는데, 파일을 고객에게 출력해달라고 할 수도, 정식 명함이 없으니 포스트잇에 연락처를 수기로 적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표, 000


셀프 하사한 직책임에도, 이름 석자에 1톤 급 무게가 실린다. 성공에 대한 이글거리는 욕망에 명함 컬러부터 이름하여 '삼성 블루'로 당당하게 요구했지만 정작 내 마음 가짐은 '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대전제로 하고 있다.  망하는 데 주된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닌, 최악의 경우를 되새기며 뭐든 자신 있게 밀어붙혀보겠다는 각오에 가깝다.   




1인 사업 시작에 있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단연 '시간관리'다. 프리랜서의 생활이 난생처음인 데다, 아침잠에서 깨려면 5분 간격의 알람을 최소 3번 이상은 들어야만 할 정도로 심각한 잠보이기 때문이다.(나이 들면 잠이 준다고 누가 그랬지??!!!)   굳은 다짐과 철저한 계획만이 이 구역 1등 한량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근 20년 만에 시간표를 그려본다. (다행히 요즘에는 없는 app. 이 없다)  계획을 완성시키고 느닷없이 발현한 예술가의 혼 때문에 구역별 색상 지정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액션 까기'를 추가 시전하고 말았다.  그래도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완성하고 보니 뭔가 석연치 않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그려지지?'  


그랬다. 내 몸은 여전히 십수 년간 누적된 직장 생활의 DNA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성대로 9-6을 근무 시간으로 정한 것부터가 착오였다.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던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또다시 스스로를 구겨 넣으려 했던 것이다. 벼룩의 자기 제한 실험과 다를 바가 없다. (문을 열어놨는데 왜 나가지를 못하니....ㅠㅠ)


'아니지.. 아니지.. 조금 유연하게... 생각하자'




업무 관리대장은 있지만 숨 막히는 일과표는 지워버리기로 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하는 시간도, 일하지 않는 시간도 오롯이 나의 통제하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 맞다. 내가 대표지?!!'


즉슨, 큰 틀에서 고객과 합의가 된다면 세세한 일정은 내 편의와 여건에 맞출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월-금, 9-6을 근로시간으로 고수할 필요는 없다.


'어머! 이거 벌써부터 맘에 드는데!!!'


이를테면  평일 낮에 중요한 볼 일이 있으면 오후 일정을 빼고 저녁 시간 이후에  필요한 업무를  수 있다.

출퇴근이 명확하지 않아 뭔가 뒤죽박죽 해 보일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밤낮, 평일 휴일을 따질 필요가 . 새벽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할 수 있는 반면  의욕이 생기지 않는 때에 억지로 책상에 매여 있지 않아도 된다.  

결과적으로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고작 개업 한 달 차 주제에 꽤나 서술이 길었다.

몇 개월만 지나도 지금 이 느낌이 가소롭게 느껴질 테지만  일생에 다시없을 신선한 경험이기에 이 순간을 조금은 기록해두고 싶을 뿐이다.

   

무튼,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조심스럽게 기대해보며..

1인 기업의 고군분투기를 지금부터 차곡차곡 남겨보겠다.


LEGOL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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