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보면 놀랄 것도 없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불과 몇 개월 전 직장생활을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출근에서 퇴근까지 오로지 업무에만 매진할 거라는 생각은 그 누구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근무했던 기업 인사팀에서는 업무 시간 중 직원들의 한도 초과의 딴짓(티타임, 담배 타임 등)을 현장 검거하기 위해 매시간마다 건물 내외로 순찰을 돈 적도 있더랬다. 직원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래도 월급은 변함없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설령 상사에게 업무적으로 심한 비난을 들어도, 인사고과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하루 이틀 좀 느슨하게 근무를 한다 해도 (누군가는 직장생활 전체를..) 월급만큼은 나를 패싱 하는 일이 없다. 직장 생활에서는 일하거나, 일하지 않거나,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로 돈벌이를 하는데 지장을 받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입사 관문을 통과한 순간, 돈벌이에 대한 고민은 이미 다른 나라 이야기가 돼버린다.
그런데 사업은 그럴 수가 없다.
일하지 않는데 누가 통장에 돈을 거저 꽃아 주지 않을뿐더러(오히려 나가는 돈이 은근히 많다), 지금 당장 일을 하고 있다 해도 다음 건을 확정 짓지 않으면 수입 또한 그 즉시 끊긴다. 설령 이달에 직장 시절 월급의 몇 배가 들어온다 해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은 목돈은 자칫 방심하는 순간 안정적인 가계 운영을 방해하는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프리랜서에게 '자유'는 '안정적인 수입'과 맞바꾼 대가나 다름없다.
다음 일감을 찾는 일도 적지 않은 수고로움이 든다.
잠재 고객 대상의 영업은 관련 분야에서 아무런 밑천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나 다름없다. 100군데 이메일과 전화를 돌린다 한들 회신은 단 한 곳에서조차도 못 받을 수 있다. 적어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안전한 거래처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그게 얼마가 소요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이런 생활을 무기한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내 경우는 과거 고용주였던 대학이 현재의 주거래처로 전환되면서 상대적으로 영업이 수월한 편이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근무하며 연을 맺게 된 여러 인맥 덕분에 최소한 문전박대당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적어도 '어디 한번 제안서나 줘보세요~'라는 피드백을 받는 것만으로도 그 말에 담당자의 진심이나 추진 의지가 얼마가 담겨있건 상관없이 내게는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야 할 하나의 통로가 된다.
될 때까지 가능성을 묻고, 또 묻는 일,, 이게 사업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의 내용과 결과 역시 100% 내 책임으로 귀결된다.
책임을 분담할 조직도, 동료도 없다. 그래서 일의 성과가 안 좋으면 오롯이 내가 무능한 탓이고, 반대로 좋으면 그또한 내가 유능한 덕이다.(이건 좀 짜릿하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 따위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 하기 나름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시스템의 비호 아래 '적당히'하던 일조차도 이제는 더 많은 힘을 주게 된다. 거래처 담당자와 주고받는 메일 한통, 전화 한 통에도 온 신경이 곤두선다.
비록 1인 기업이라 해도 상대가 나를 '대표님'으로 호칭하고 있는 이상 내가 내뱉는 언행은 기분에 따라 때마다 바뀌는 사적인 의사표현이 아닌 내 사업의 지속성을 위한 철학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1시간은 직장인으로서의 1시간과는 그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무튼 아직 나는 당장 이번 달 수입이 얼마인지 다음 달 수입은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할지에 대한 불편한 고민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그래도 모두가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다만 한 건이라도 일할 기회가 예상보다 빨리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 한 번의 기회가 끝이 아닌 다음 시작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나를 충실히 갈아 넣어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