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그레이 Apr 30. 2021

사람 사는 '집'으로서의 아파트

생애 첫 아파트 거주 후기

기생충, 그 집에서 살아본 적 있어요


결혼 전 나의 오랜 주거형태는 다가구, 다세대, 빌라의 지하층부터 옥탑까지 흔하디 흔한(?) 아파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이었다.   


영화 '기생충' 속 기택 가족의 반 지하집의 이색적임에 남들처럼 "OMG, Unbelievable!"을 외칠 수 없었던 것도 그보다 더 열악한 집이 나의 현실이었던 적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사장 막내아들의 후각에 걸렸던 기택 부부에 게서 나던 '냄새'는 24시간 빈틈없이 눅눅하고 습한 환경에 서 지내본 사람만이 공유하는, 아무리 샤워를 하고, 옷을 빨아 입고, 향수를 뿌려도 가릴 수 없는 '낙인'과 다름없었다.


그런 곳들의 기본적인 특징은 결국 '집다움'을 고려하지 않은 부실시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감이 없는 독자를 위해 몇 가지 대표적인 공통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소음이다.  방음 새시 등이 불완전하여 행인 발소리, 말소리는 물론 수시로 골목을 질주하는 오토바이 소리까지도 집 안을 흔들어놓기 일쑤다. 어떨 때는 한밤 중 내 귀 바로 옆으로 차가 지나가는 듯한 스릴(?) 감에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날 때도 있다. 이곳에서 층간소음을 운운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둘째는 곰팡이다. 부실한 단열재가 원인이다. 방마다 시커멓게 핀 곰팡이 벽지는 오래 봐도 흉측하지만, 그보다 기관지 건강에 가장 치명적이다. 그 덕에 생긴 만성 비염은 이제 평생을 함께해야 할 동반자가 되었다.

셋째는 벌레다. 지하나 저층이라면, 혹여 집 앞 전봇대가 하필 그 구역 쓰레기 수거 지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외부의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자기 집 드나들듯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보안 위협이다.  관리 시스템이 없고 외부환경에 쉽게 노출되어있는 탓에 택배 안전은 고사하고, 신변 안전을 위협받기 쉽다.  큰 맘먹지 않고도 낯선 외부인이 현관까지 따라 들어오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찌어찌 생애 첫 아파트에 이사 온 지 만3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주소지를 설명하느라 택배 기사님과 몇 번씩 전화로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며, 늦은 귀갓길 택시 안에서 "여기서 우측요, 저기서 좌회전요"를 눈에 불을 켜고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아파트 거주의 장점은 분명했다. 우선 앞서 언급한 빌라 및 다가구에서 체감했던 단점 거의 대부분 해소됐다.  


무엇보다 관리사무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편리했다. 공용시설 관리 등이 잘 되어 있어서 주변 환경이 늘 쾌적하고, 정기적인 방역소독으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벌레의 생존을 확인한 적이 없으며, 택배 분실 우려나 보안에 대한 위협을 잊고 사진도 오래됐다.


외부 소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창을 닫으면 거의 완벽하게 차단되고, 단열 역시 큰 문제가 없다.

가끔 뉴스를 통해 접하는 아파트 층간 소음 이슈는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에 크게 좌우되는 요소 인터라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이웃을 만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다.


반면에 적응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부분도 있다.  

가장 크게는 집을 벗어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과거에는 집 밖으로 나가는데 채 수 분이 걸리지 않았다면, 아파트는 관문이 참 많다. 우선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서 타야 하고, 동을 나가서 단지를 완벽하게 벗어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가끔 엘리베이터 트래픽 잼이 걸리거나, 다른 집 이삿날과 겹치기라도 하면 1층까지 가는데만 5분 이상이 소요될 때도 있다.  


고정 관리비 액수가 크다는 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부분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쾌적하고 좋은 환경 유지에는 당연히 돈이 들어간다. 과거에는 관리비가 아예 없거나, 내더라도 1~2만 원 수준이었던 상황에 비하면 아파트 관리비는 그에 비해 수치상으로 1500% 이상 폭등했다. 게다가 여름과 겨울에는 냉난방비까지 더해지다 보니 관리비 절약이 매우 중요한 살림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부동산 이슈중심에 아파트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하다.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입지, 브랜드 등을 따져가며 아파트 몸값 매기기에 바쁘다 보니 어떤 동네의 어떤 아파트의 몇 평형에 사는지를 묻는 것을 무례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아파트는 그런 기준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단지 여태까지 살아봤던 곳 중 가장 '안전하고, 깨끗하고, 따뜻한' 집이자, 과거의 주택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가치를 풀 패키지로 제공해주는 가장 이상적인 주거 공간이다.


물론 어떤 형태든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뉘일 수 있다옥탑방도 최고의 집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경험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여름에는 푹푹 찌고, 겨울에는 웃풍때문에 패딩을 입고 지내야 하는 곳에서 드라마에서나 연출되는 낭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후기인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나는 아파트 예찬론자가 될 만큼 거주 경험이 충분하지도 않다. 다만 생애 처음으로 '집다운 집'에서 살아본 남다른 감회를 시간이 흘러 지금의 생생한 감동이 무뎌지기 전에 한 번쯤은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항상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므로)


평생을 아파트에 살아온 누군가에게는 혹은 이보다 더 나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시답잖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추위, 더위, 벌레, 안전의 위협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내 기준에서 아파트는 가장 살기 좋은 집임에는 틀림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싫어하는 말 '원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