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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Sep 03. 2021

'돈' 얘기부터 하면안 될까요?

돈을 따진다는 건 그 일에 진심이라는 뜻

A.

"이 업계에 있으면서 가짜를 참 많이 봤어요~

학생을 위하는 마음보다 실속만 차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죠"


B.

"네, 저도 학교에 있으면서 알맹이 없는 업체를 많이 접했습니다"


A.

"그래서 우리 회사의 지향점은 '평생멘토링'입니다.

학생이 우리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가 학생을 먼저 버리는 일은 없죠"


B.

"맞아요.. 학생들이 진로 관련 고민이 있을 때

막상 주변에 물어볼 어른이 없다는 게 저도 늘 안타까운 부분이었기 때문에 공감합니다"


A.

"역시, 선생님은 저희가 지향하는 방향과 일치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B

"그런가요..?  이 일을 하려면 학생을 애정 하는 마음은 기본으로 있어야 하니까요"




50여 분째 같은 주제로 이야기가 맴돌고 있다.  

누가 더 이 일에 진심인지, 누가 더 학생을 많이 아끼는지 입씨름을 하느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휴대폰 시계를 틈틈이 곁눈질하며,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속이 타는 건

정작 함께 일을 하는 데 있어 진짜 '궁금한 주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주실 건데요??? 네??'


라고 격렬하게 묻고 싶다.


피차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돈 이야기를 터부시 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심지어 상대는 내가 학교 재직 시절에 그렇게 끔찍이 아낀다는 학생들을 위한 다과비용 몇만 원 조차도 견적서에 에누리 없이 포함시켰던 전력(?)이 있지 않던가??  


그런 상대가 하루아침에 '병'으로 신분이 하락한 나를 앞에 앉혀두고 사회복지가라도 된 듯 뻔뻔하게 직업윤리를 운운하고 있다.  속셈은 뻔하다.  인건비가 100%인 사업에 '나를' 필요로 한다고 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돈' 이야기를 얼렁뚱땅 넘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다음 주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상대는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인쇄물들을 두 손으로 그러모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임계점이다. 막아야 한다.

얼마 받는지도 모르고 일을 시작한다고? 무슨 이런 X 같은 경우가!!!



"잠, 잠깐만요! 그러면 저희 계약관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10억 현금 자산이라도 있는 마냥 태연하게 물을 의도였는데 빗나갔다.  

내가 듣기에도 다급했다. 제길.


아!! 맞다.  A 프로그램은 00만 원, B 프로그램은 00만 원 그래서 도합 00입니다. 8.8% 세금 뗄 거고요




 

금액의 크기를 떠나 내가 궁금한 건 '셈법'이다.

움직이는 시간이 곧 돈으로 직결되는 프리랜서를 불러놓고,  

계량 없이 일방적으로 '몸 값'을 정해버리는 이 프로세스가 몹시 언짢다.


상대는 이 업계 베테랑이기 때문에 저울질을 하는 순간 비용이 더 발생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터. 하지만 그 이상 따져 묻지 않기로 한다. 현재의 나는 내 몸 값보다 '일 할 기회'가 더 절박하다.

나무를 심으려면 '삽질'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좀 더 큰 나무를 심고 싶다.  


삶의 목적이 돈은 아니지만, 일하는 목적이 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같은 시간, 같은 노동력을 투입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 그래서 사업도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돈을 따지는 것은 다른 말로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성이 강하다는 뜻인 동시에,

그 수단이 되는 '일'에 누구보다 책임과 열정을 다하겠다는 강력한 자기 확신에 근거한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돈을 벌기를 원하고,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돈을 따진다는 건 그 일에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이다.


일을 통해 얻는 의미, 보람, 성취는 돈을 앞설 수 없는 인생의 보너스 같은 거다.

 

나에게 일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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