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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Feb 04. 2022

명품백, 나만 없는거야?

그래도 사랑받고 살고 있습니다

가까운 지인이 못 보던 가방을 들고 있습니다

눈에 너무 잘 띄는 번쩍이는 은색 로고 탓에 모르는 척할 수가 없습니다.


"우와! 이거 00 명품 아니야? 샀어??"


이미 이런 대화가 오갈 것을 예상한 지인은 득의에 찬 표정으로 답합니다.


"아니,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사~ 남자 친구가 사줬지"


그 답에서 두 가지 함의를 읽어냅니다.


우선, '내 돈 주고 살 수 없을 정도로 고가이다'라는 것과

'그 비싼걸 남자 친구가 나를 위해 기꺼이 사줬다'라는 것이죠.


이런 대화는 비단 특정 지인에 국한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수차례 경험했던 바입니다.  공교롭게도 저의 역할은 한결같이 '반응하는 쪽'이었습니다.


결혼 선물로 예비 남편으로부터, 혹은 출산했다고 해서 시부모님으로부터 천만 원 상당의 샤넬 가방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종종 전해 듣습니다.


저도 물욕이 강한 미생인지라 마음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은 '부럽다..'입니다.  

가감 없는 솔직한 심정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그런 생각 뒤에 어김없이

해서는 안 되는 의문이 거머리같이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나는... 왜...??'


샤넬은커녕 코치 가방 하나 없는 제 현실을 돌아보며 괜스레 박탈감을 느낍니다.  


'과거의 내 남자 친구들은 왜 내게 명품을 사주지 않았나'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던 건가?'

'내가 그 정도로 매력이 없었던 건가?'


와 같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다 종착역은 결국 내 옆에서 손수 마른빨래를 개키고 있는 우리 남편입니다.   


"여보, 여보는 왜? 나한테 명품백을 왜 안 사줘?"


라고 일단 던지고 봅니다.

물론 물어봐놓고도 스스로도 형편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사실 여기에 이렇게 적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왜라니, 왜라니.. 그러면 나는 과거 남자 친구들에게 혹은 지금의 남편에게 사준적이 있던가?'   


하지만 남편이라면 저의 어떠한 아둔함도 기꺼이 감싸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부끄러운 줄 알면서도 민낯을 과감하게 드러내 봅니다.


남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대신, 사랑을 매일매일 주잖아~"


그렇습니다.  우문현답은 바로 이런 걸 뜻하는가 봅니다.


남편이 제게 값비싼 선물을 사준 적은 없습니다. (솔직히 저도 없죠) 오히려 뭘 갖고 싶다고 했을 때 갖은 카드 또는 쿠폰 할인을 동원하여 세상에서 가~장 저렴하게 사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죠.

  

하지만 저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는 디스카운트가 없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수시로 아이 컨택하고, 서로 안아주며, 매일매일의 서로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그 속에서 저는 충만한 행복을 느끼죠.  이건 아마도 명품 가방은 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 (맞나요? 가져본 적이 없어서 확신은 못하겠..)


그래서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선물의 격표가 곧 사랑의 크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별한 날 받는 특별한 선물보다는 매일 같이 장미꽃 한 송이를 받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이상 명품백이 없어서 왠지 모르게 서글픈 모든 이들을 위한 훈훈한 결말이었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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