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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Jan 30. 2023

하락장에 집을 사고, 팔았습니다.

집은 물건이 아니라 행복이 자라는 곳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 인생에 있어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생애 첫 자가이자, 생애 첫 아파트이고 또 무엇보다 생애 첫 '집 다운 집'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애착도 남달랐다.  근 5년 가까이 어엿한 '내 집'으로 살면서도,  애틋한 마음에 벽에 못 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고, 좁디좁은 문틈에 쌓인 먼지까지도 닦아낼 정도로 아끼며 감사한 마음로 지내왔다.  집값이 올랐네... 떨어졌네로 지난 몇 년간 세상이 요동치는 와중에 나름의(?) 내적 평화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집이 내 삶의 질 향상에 미친 영향과 가치가 그보다는 몇 배나 컸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집에 살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크고 작은 행복을 많이 느꼈다.


그러다 내가 코로나 중간에 1인 기업을 선언한 후로 프리랜서 부부에게 집은 곧 사무실이기도 했는데 애당초 그러한 고려 없이 공간 배치를 하다 보니 침실과 남편 작업실을 제외한 남은 방 한 칸은 이미 옷들에게 임대를 줘버린 상태였다.  이 참에 전면적인 레이아웃 개편을 해볼까도 싶었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수납공간에 이 어마어마한 양의 옷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생각하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에 이사 가면..'이라는 기약 없는 다짐을 하고, 지난 1년여간 거실 한편이 공식적인 내 사무실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큰 거실창을 옆에 두고 있으니 개방감도 있고, 적당한 햇살도 들어오니 더할 나위 없는 사무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비대면으로 교육이나 상담을 하는 일이 잦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남편의 작업에 방해가 되기 시작했고, 나 또한 수시로 오가는 남편의 동선에 신경을 곤두 세우는 등의 문제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사를 하기로 했다.

사실 이 결심은 작년 4월이 처음이었다.  예상대로(?) 집을 내놓자마자 현관문이 닳도록 많은 발걸음이 오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녀갈수록 무조건 빨리 팔리기만 하면 좋겠다는 처음의 생각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우리 만큼이나 애정을 가지고 살아줄 분들이면 좋겠다'


라는 희망사항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데 이 정도는 당연한 바람이 아닐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점에 우리 집을 다녀간 분들의 면면에서는 그런 진심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살 집을 고르는데 집에 머무는 시간이 5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을 보는 게 아니라 채점을 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썩 내키지 않는 와중에 다행히(?) 경기가 악화되고,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이후 6~7개월 간 더는 집을 보러 오겠다는 문의조차 없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야심찬 이사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는 듯했다.




그러던 중 해가 바뀌고 느닷없이 집을 보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거래 성사에 대한 기대는 져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우리 집이 못 생겨 보이는 건 어찌 됐건 용납할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은 뒤, 훈련된 병사처럼 일사불란하게 집 단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첫 방문객이 왔다.

마스크를 꼈지만 한눈에 봐도 이제 갓 서른이 됐을까 말까 싶은 젊은 커플이었다.

커플은 크지도 않은 우리 집 구석, 구석을 참으로 정성스럽게 살펴보며, 궁금한 질문들을 던졌다.  

누구라도 내가 아끼는 물건에 진심을 다해 관심을 보여주면 상대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커플이 딱 그랬다.


내심 '이 부부가 우리 집의 다음 주인이 되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이 내 바람을 들어주었다. 집을 보고 간 직후였다. 부부는 중개사를 통해 매수 의사를 전달해 왔다.  우리 부부가 꼭 그랬었다.  이 집을 보고 난 후,  난 남편의 팔에 온 체중을 실어 매달리며 '여보, 이 집이야!!!'를 거의 울부짖었더랬다. 밤사이 다른 사람이 와서 가로채갈 것 만같은 불안감에 남편을 졸라 계약금을 그 즉시,  원 주인의 요청보다 더 많이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첫눈에 반한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커플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우리 집이 드디어 꼭 맞는 다음 주인을 찾았다는 생각에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계약서를 쓰는 날, 나도 모르게 커플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우리 집, 정말 좋아요. 이 집에서 좋은 일 정말 많았어요'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내심 우려스러우면서도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 순간, 이전 주인도 계약 당일에 꼭 같은 말을 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그때는 첫 계약이라는 생각에 머리가 핑 돌도록 너무 긴장을 해서 그 말을 새겨들을 새가 없었는데, 어느덧 내가 그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가 돼있던 것이었다.  전 주인이 했던 말뜻이 근 5년 만에 가슴으로 와닿았다.  전 주인도 우리 만큼 이 집을 아끼고 사랑했구나... 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일이 되려고 하니 거침이 없었다.

우리 집의 새 주인을 찾아준 바로 다음 날, 우리도 운 좋게 새 보금자리를 찾는 데 성공했다. 과연 이 집만큼 마음에 드는 집이 있을까.. 싶었는데 오만이었다. 이사 갈 곳도 지금의 집만큼 행복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는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잘해보자!'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매수 계약 당일,  역시나 우리 부부보다 젊은 부부와 마주 앉았다.  (이제는 어딜 가도 우리가 젤 늙었다..ㅠㅠ)

걱정 아줌마답게, 너무나 맘에 든 집이다 보니 '혹시 주인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면 어쩌지..?'라는 노파심에 숨도 편하게 쉬지 못하며 석고상처럼 앉아있었다. 바로 전 날, 젊은 커플이 꼭 그랬겠구나 싶었다.


'저희 집 정말 좋아요, 이 집에서 좋은 일 정말 많았어요.'

'꼭 좋은 분들한테 팔고 싶었는데 다행이에요.'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따뜻한 말인 동시에, 이 분들이 집을 대하는 태도를 실감하게 했다.

좋은 집이니까 어떻게든 비싸게 팔아야지가 아닌 애정을 가지고 잘 관리했던 집인 만큼 '좋은 사람들에게 팔고 싶다'라는 마음이 우리 부부와 꼭 닮아있었다.  


어쩔 줄 몰라 '덕분에 좋은 집으로 이사 갑니다'라고 화답하자,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공인중개사는 정말 수도 없는 매매 현장에 있었지만 이렇게 덕담이 오가는 건 처음 본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부엌 창으로 햇살이 정말 잘 들어와요. 감자에서 싹이 어찌나 잘 자라던지..'


법적인 사항이 난무하는 무미건조한 순간에, 순수한 눈빛으로 감자싹 이야기를 하던 전 주인의 코멘트에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빵 터졌다.  




좋은 기운을 받았으니 나도 젊은 커플에게 전해줘야겠다 싶다.

이 집에서 살면서 터득하게 된 삶의 소소한 노하우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넘겨주려 한다.

그 젊은 커플도 이 집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누구보다 밝은 미래를 꿈꾸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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