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없다.
(배우자도 3개월 만에 정했는데!!)
2년여간 강아지에 대한 열망을 바로 옆에서 체감한 동생은 도무지 끝날 줄 모르는 나의 고민이 지긋지긋하다며 '아무도 비난하지 않으니(?)' 펫샵에서라도 입양을 하라고 성화다.
그리고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남편조차도 오가는 이웃집 강아지에 온 마음을 뺏기는 데다, 수시로 '내 강아지' 타령을 하며, 미래의 반려견 이름까지 미리 지어두는 나의 집착에 지금은 본인 또한 선호하는 외모의 강아지 이미지와 영상을 곧잘 나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ㅋ)
내 인생에 강아지가 한 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대 때, 당시 중학생이던 동생이 인터넷 클릭만으로 구매(!!)한 강아지를 배송(!!!) 받은 적이 있다.
강아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했던 데다, '생명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조차 없던 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 외모에 홀딱 반해 처음에 몇 달간은 애지중지 사랑을 줬었는데, 불과 1년도 안 돼서 몸집이 너무 커져버린 탓에 어쩔 수 없이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지인에게보냈더랬다. 되짚어보면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내 시선을 사로잡은 강아지가 등장했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이효리의 반려견, '순심이'였다. '셀럽견'이라 불릴 정도로 순심이는 이효리의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는데, 놀라웠던 점은 이효리와 순심이가 서로를 대하는 특별한 태도에 있었다.
무한정 애정을 주고받는 주인과 애완견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존재 자체로 크게 의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순심이는 쓰다듬어 달라고 꼬리를 흔들거나 날뛰지 않았고, 그저 이효리 곁에 조용히 머물며 그녀를 바라봤고, 그녀 역시도 순심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듯한 모습이 지금까지도 인상에 남아있다.
동시에 그녀가 앞장서 보여준 '유기견 봉사와 입양'등의 세세한 과정을 지켜보며 올바른 반려견 입양과 양육 문화에 대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눈과 귀를 열 수 있었다.
그리고 강형욱 훈련사가 나타났다.
한국 반려견 문화는 그의 등장 전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반려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크게 바뀌었다. 우선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주인'에서 '보호자'로 호칭이 바뀌었고, 강아지 산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도 확산되어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반려견 산책을 시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듯, 관련 유튜브 영상과 방송 프로그램 그리고 관련 비영리 단체까지 우후죽순 생겨났다.
나 역시 '언젠가는 꼭 키운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선수학습 차원에서 그런 영상들을 챙겨보기 시작했고, 유기견 보호단체도 4~5곳 이상 구독하며, 나와 인연이 될 강아지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반려견 입양과 양육에 대한 상식이 늘어났지만, 오히려 많이 알면 알수록 강아지 입양을 더욱더 망설이게 되었다는 데 있다.
이유는 너무 많은 '자격 조건' 허들 때문이었다.
과연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기견 보호 단체에서 요구하는 '입양 자격'은 정말 까다로웠다.
'집이 비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야 하고, 하루 세 번 이상 산책해야 하고, 가족 구성원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강아지털 알레르기가 없어야 하고, 강아지를 키우는데 충분한(?)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입양 후에 몇 개월간은 근황을 사진 등으로 공유해줘야 하고....'
심지어 이 모든 조건에 들어맞는다 해도 나처럼 초보가 욕심낼만한 어린 강아지들은 경쟁률이 치열해서 결국 또 과거에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있거나 혹은 집에 강아지가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주인에게 밀리기 일쑤다. 임시보호도 마찬가지다.
결국 병약하거나, 나이가 많은 유기견 안에서만 선택이 가능한 상황이 되는데 막상 그런 아이들은 좀처럼 입양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거 보면 결국 '나는 아직 반려견을 키울 자격이 없나 보다' 내지는 '나는 강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게 아닌가 보다'의 자책으로 귀결된다.
주변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거나,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참 많은 조언을 구했는데 놀랍게도 열명 중 열명은 '입양 반대'부터 하고 본다. 정작 본인들 카톡이나 인스타 사진에 강아지 사진으로 도배가 돼있을지언정 돌이킬 수만 있다면 '안 키우던 때'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만큼 '상상 이상으로' 많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다. 근데 나는 그런 상상을 2년이나 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부분에 대한 예상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 지인들의 입양 용기가 놀라울 따름이다.
심지어 일부 지인들은 무턱대고 '임시보호'나 '유기견 봉사'부터 하라고 채근한다. 임시보호를 하면서 내가 강아지를 키울만한 역량(?)이 되는지를 가늠하고, 봉사를 통해서 강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고 난 후에야 입양 여부를 고민하라는 취지인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또다시 입양에 대한 의지가 크게 한 풀 꺾이고 만다. ('이 세상 모든 강아지들의 엄마가 되겠다는게 아니라고...ㅠㅠ')
내가 원하는 건 '내 맘에 꼭 드는 건강하고 예쁜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해서, 평생 가족으로 소중하게 키우고 싶다'는 것인데,, 이 정도 마음 가지고는 반려견 입양은 어림없는 것일까?
2년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공부했음에도, 여전히 나는 반려견 보호자로서 자격 미달인 것만 같다.
모두가 이효리가 될 수 없음에도, 이효리부터 되고 보라는 무언의 강요에 입양 결정은 또다시 기약없이 미뤄질 뿐이다.
생명에 대한 책임감, 가족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려는 진지한 태도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닌, 나와 평생 가족이 될 미래의 반려견에게만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