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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좀 넘지 맙시다 거.

나는 불편한데 당신은 내가 편한 이유

by 미그레이

하지 않아도 될 말,

상대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나 행동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

상대의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는 말이나 행동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참 너. 무. 나 많다.


소위 아줌마, 아저씨가 되면 다들 그렇게 변해가나 싶었는데

오히려 정 반대로 가는 나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사람 BY 사람인 것이다.


나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혹은 나이를 이미 많이 먹었다는 것은

과거보다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그래서 마냥 편하게만 생각했던 열 살이나 어린 동생도, 이십 년 지기 친구도

오히려 과거보다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야 더 조심스럽게 여겨진다.

그런데 '그 선'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넘어버린다.


정말 불편하다.

그리고 싫다.





대표적으로 은연중에 타인의 가치관을 '평가'하는 행위가 그렇다.

'가치관'은 '가치를 두는 방향'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고유성을 가진다.

따라서 가치관에 옳고 그름은 없다.

오로지 상대의 가치관이 나의 그것과 부합하는가, 부합하지 않는가

그래서 상대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 있을 뿐이다.


'소비 습관'을 예로 들어보자.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과

먹는 데 쓸 돈을 아껴 좋은 옷을 사 입겠다고 하는 사람의 가치는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인생에 있어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후자는 음식보다 옷을 통한 자기표현과 만족을 '더'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누가 누구를 옳고, 그르다고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상대의 가치에 대한 피드백은 한 가지면 충분하다.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그리고 나의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면


"저 같은 경우는 조금 달라요..."


라고 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이 지점에서 이상한 반문을 던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아니, 왜요?????"

"어떻게 음식보다 옷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 말은 곧,


음식보다 옷이 중요하다는 (당신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없어요.


라는 '옳지 않다'는 함의가 있는 최종 평가로 도달한다.


이런 흐름의 대화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아니 정확히 말할 의욕을 상실해 버린다.

'다름'을 애초에 부정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1분 1초가 고문이나 다름없다.


최근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


몇 년 만에 우연히 성사된 대학 선배와의 식사자리.

반가움이 컸지만 공교롭게도 운동과 식단 중이라 술은 마실 수 없음을 전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게 할 만큼 찬 물을 끼얹는 선배의 대답이 돌아왔다.


"뭐 하러?"


그다음 말이 더 가관이었다.


"아무도 너 신경 안 써"


"제가 알잖아요. 제 만족에서 하는 거예요"




여기서 '자기 관리'를 바라보는 선배와 나의 가치관이 첨예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선배에게 '자기 관리'는 연애와 결혼을 앞둔 미혼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니 40대, 기혼여성이 무엇을 위해 자기 관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

그래서 본인이 관리를 안 하는 것도 자유.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가치까지 무시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침범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추천으로 운동용 손목밴드를 구입했다.

한 세트에 3만 7천 원이나 하는 내 기준에서는 고가의 장비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묻는다.

남편분 것은 '왜' 따로 사지 않았냐는 것이다.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걸 굳이 2개를 살필요가 없어서요. 같이 쓰면 돼요."


"그래도 남편도 운동할 때 있어야죠."


"비싼데 뭐 하러요. 저희는 하나면 돼요."


"3만 7천 원이 뭐가 비싸요."


라는 흐름에서 이미 나는 심리적 소진 상태에 직면한다.

'네, 다음에 고려해 볼게요'라는 표면적 항복선언으로 대화를 포기한다.


'우리는 하나면 됩니다.

우리는 손목스트랩에 3만 7천 원을 쓰는 걸 비싸다고 생각하고요,

(다이소에 심지어 3천 원 짜리도 있던걸요~)

심지어 같은 걸 두 개 사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2개를 사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몰아붙이지 마세요.'


라는 못 마다 한 말 한 묶음은 한 모금의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저는 선생님(=나)을 편하게 생각해요"

라는 말이 더 이상 친근하게 들리지 않는다.


'죄송하지만 저는 선생님(=상대방)을 편하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예전에도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예요.

아마도 제가 선생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어줘서 그런 것 같아요'


참 희한하다.

내가 사력을 다해 조심해서 대하는 상대는 정작 나에게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상대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그런데 상대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조차도

내가 자신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편안하다고 한다.


그들처럼, 나 역시도 내 가치를 존중해 주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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