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퇴사에 대한 인식 차이
병간호 때문에요
약 두 달 전 한 팀원이 퇴사를 표명했다. 사유는 '가족 일원이 편찮아서'였다. 퇴사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지에 따른 자유 선택지이기 때문에 꼬치꼬치 이유를 캐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유를 말한다 한들 결코 그것이 전부 일리도 또는 100% 진실만을 포함하고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소위 '프로퇴사러'로 수많은 기업에서 '적당한 퇴사 사유'를 말한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할 수 있다.
'유학을 준비 중이라서요', '대학원에 진학하려고요',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집에서 좀 쉬려고요'와 같은 이유 중에 '가족 일원이 편찮아서요'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완전히 해당 업계를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그런 이유가 결국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으면 수면 위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병간호를 해야 한다던' 해당 팀원은 퇴사 직후 동종 업계의 다른 기관에 입사한 사실이 굳이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말았다. ㅎ
결혼 준비 때문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퇴사 희망러가 등장했다. 표면적인 사유는 '결혼 준비'였지만 그 역시도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결혼을 해본 입장에서 결혼 준비에 퇴사까지 필요한 일일까 싶다) 왜냐하면 해당 직원은 최근 한 달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직접적으로 호소한 적이 몇 차례나 되었기 때문이다. '과중함'의 기준은 저마다이겠지만 무튼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있는 점을 배려해 출근 시간을 늦춰주고, 해당 업무의 서포터를 배정했고, 기존 담당 업무 중 일부를 빼주는 등의 조처를 취했다. 그랬더니 퇴사 사유의 비중이 바뀌었다.
"저는 열심히 하는데 따뜻한 말을 안 해주세요"
물음표 천 개를 유도하는 사유였다. '따뜻한 말이라..' 두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하나는 '사회생활을 누가 따뜻한 말을 듣기 위해 하는 건가?'와 다른 하나는 '나는 과연 따뜻한 말을 들었기 때문에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아함.
제가 기대하는 업무 역량을 쌓기 힘들 것 같아요
불과 2주 뒤, 세 번째 퇴사 희망러가 등장했다. 그래도 해당 직원이 제시한 이유는 직업인으로서의 남다른 비전이 있어 보이는 '꽤 그럴듯한 사유'였고, 퇴사 사유 매뉴얼에도 없던 것이었기에 자동적으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 비전으로 떠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을 이유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연이은 세 명의 퇴사에 올해 부장 승진 심사를 앞두고 있는 팀장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한 명까지는 괜찮았고... 두 명까지도.. 쩝.. 찜찜하기는 하지만 이유가 '결혼 준비'니까 뭐.. 그럭저럭 또 넘어가는 모양새였다가 짧은 텀에 또다시 사표가 제출되자 본인의 '관리 역량'에 흠집이 생기고 그로 인해 승진 고과에 치명타를 받게 될 것에 대한 현타가 온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까지 들쑤셔가며 의미 없는 면담 태세에 돌입했다. 별 일 없이 생활하고 있던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가 딱히 없는데 분위기로 미뤄보아 뭐라도 애로사항을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입사한 지 2개월도 안되어 조직 분위기에 적응하기에 여념이 없는 직원까지도 면담 대상에 포함되었다. (뭐하자는 거?)
저기요, 번지수를 잘 못 찾으셨어요.
퇴사 원인이 '내부'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상담 업계 분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해 보였다. 취업 상담 직종은 직무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에 비해 기관의 처우가 매우 열악한 전문 분야 중 한 곳이다.
나중에 경력을 쌓은 뒤 개인사업을 하게 된다면 모를까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는 대부분 최대 2년의 비정규직 채용에, 급여 수준도 매우 열악하다. 이러니 소속 조직에 대한 '로열티'라는 것이 생기기 힘든 구조이다.
채용 공고가 수시로 올라온다는 것은 어느 기관이나 인력 이동이 매우 잦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는 필요한 경력만 채울 목적으로 딱 1년만 근무한 뒤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하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공교롭게 위의 세 명의 퇴사 표명 시점도 각자의 근무기간이 딱 1년이 된 직후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죠
자기 자신을 증명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월급과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에게 '퇴사'는 엄청난 '사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에게 '퇴사'는 어찌 보면 '숙명'에 가깝다. 특히 그 분야가 나름의 '전문성'을 요한다면 끊임없이 개인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함 혹은 월급을 단 10만 원이라도 더 주는 곳이라면 - 그 말은 나의 직업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준다는 뜻 - 미련 없이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고용 생태의 다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뼛속까지 정규직 팀장은 앞으로 반복될 비정규직 사원의 '퇴사 표명'에 매번 강풍에 마른 나뭇가지 흔들리듯 요동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우리 앞으로 따뜻한 말로 칭찬을 많이 해줍시다!"
역시 물음표 백 만 개를 부르는 팀장의 '퇴사 방지 방안'이라는 것이 시덥잖은 '따뜻한 말 한마디'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설마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에 다 큰 성인이 생업을 포기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