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모로코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2026년 2월 18일

by 지금을

모로코는 내게 낯선 나라였다. 한국인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국가인지 검색해도 정보가 부족했다. 팀원 K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반나절 넘게 날아가면서도 제대로 아는 건 없었다. 모로코 결혼식에선 전통 의상 카프탄을 꼭 입어야 한다는 것, 결혼식은 저녁 7시부터 아침 6시까지 밤새도록 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스페인에 도착해 디르함으로 축의금을 얼마 내야 하는지 챗지피티와 씨름하던 나는 결국 K에게 카톡으로 미리 축의금을 보내뒀다.


"라바트 공항에서 픽업 서비스가 있어요. 항공편 번호, 도착 시간, 숙소 주소를 이 번호로 보내시면 돼요. 가격은 300 MAD (약 35달러)예요. 카프탄을 그분께 맡겨둘게요.”


결혼 준비로 일찍이 모로코에 도착한 K는 스페인에서 모로코에 도착할 때 픽업 서비스를 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일반 택시비보다 비싼 금액이었지만, 카프탄을 편하게 받을 수 있는 값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차량 뒷좌석에는 투명 비닐로 포장된 카프탄이 곱게 접혀 있었다. 와인색과 금색의 조합이 꼭 고려대학교 응원복 같았다. 픽업 서비스를 쓰기로 한 건 신의 한 수여서, 기사님 덕분에 숙소 호스트와도 원활히 만날 수 있었다. 모로코 사람들은 프랑스어나 아랍어를 쓰는데 둘 다 할 줄 몰라서 어버버거리는 나를 기사님이 구해주신 것이다.


‘라바트의 심장’에 온 걸 환영한다는 호스트의 말처럼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는 깔끔하면서도 이국적이라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오로지 결혼식. 수다스러운 호스트가 방을 나가자 나는 얼른 카프탄을 입어보았다. 어떡해. 치마가 내 다리 길이보다 두 뼘은 더 길었다. 이대로라면 라바트 길바닥을 죄다 청소하게 된다. 나는 결국 귀부인처럼 치마를 손에 쥐고 결혼식장까지 걸어가야 했다.

알고 보니 카프탄은 원래 좀 길어서 끝부분을 잡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결혼식장 입구에서 어정쩡하게 움직이는 나를 본 K의 어머니가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럼에도 계속 줄 줄 흘러내리는 걸 본 어떤 모로코 여성분이 허리춤의 띠를 꽉 묶어준 뒤로는 꽤 다닐만했다.


열 시간 넘게 진행되는 모로코의 결혼식은 신부가 옷을 다섯 번쯤 갈아입는다. 신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람들은 중앙으로 나와 춤을 추고 또 춘다. 귀를 때리는 악기 소리와 타령 같은 진행자의 노랫소리. 한국인인 내게는 이 모든 과정이 어쩐지 거대한 살풀이처럼 느껴졌다. 흥이 넘치는 모로코인들 사이에서 나는 이 새벽에 전기장판 틀고 내 방 침대에 누워있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춤을 췄다. 문득 일전에 프랑스인 팀원을 한국 야구장에 데려갔을 때 그가 거대한 노래방에 온 것 같다고 감탄한 것이 기억났다. 나에게는 모로코의 결혼식잘이 초호화 노래방이었다.


“카프탄은 내일 직접 반납하시면 되어요. 주소 알려드릴게요.“


소란스러운 음악 사이로 K의 친구가 말했다. 스페인에서부터 길치 이슈로 여러 차례 역경이 닥친 나는 무사히 반납하고 올 수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내 영혼은 반쯤 빠져나가 무척 지쳐있었다. 나는 오직 머나먼 한국에 와서 일하느라 고생한 팀원 K를 향한 의리, 예의, 정신력으로 카프탄을 쥐고 춤을 췄다. “모로코 사람들은 결혼식을 이렇게 성대하게 해서 이혼은 쉽게 안 하겠어요.” 넋이 나간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웃었다. “이혼 많이 해요.” 나는 다시 힘을 내서 몸을 덩실덩실 흔들었다.


새벽 여섯 시에 겨우 숙소로 돌아온 나는 추워서 한참을 고생하게 됐다. 낮에는 반팔도 입을 수 있을 것 같던 모로코 날씨는 밤이 되자 너무 싸늘해진 것이다. 외투를 전부 스페인에 두고 온 나는 카프탄에 의지하여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몸을 웅크리고 졸다가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다. 아파! 카프탄만 아니면 다 취소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끊고 싶었다. 아니구나. 내 옷이 마드리드에 있구나.


바닥을 구른 근육통으로 심란했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고 카프탄을 반납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거기까진 순조로웠다. 그런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난관이 시작됐다. 분명 주소에 적힌 가게가 맞는데 주인이 맞은편 가게로 가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맞은편 가게에 가니 그 집 주인은 또 아까 그 가게로 가라고 했다. 그녀들은 아랍어를 썼으며,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난 머나먼 모로코 땅에 카프탄을 들고 홀로 버려졌다. 떨리는 손으로 챗지피티로 더듬더듬 아랍어를 써서 대화해 보니 이 카프탄은 자기들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색이 되어 K에게 전화하는 나에게 그녀들은 의자를 내어주며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 나보다 한참 앳된 얼굴들이었는데도 마치 나를 아기 달래듯이 위로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들고 간 카프탄은 다른 하객들과 달리 가게에서 대여한 것이 아니라 K 개인 소유였다. K의 친구는 이걸 깜빡하고 나에게 여느 하객처럼 대여점 주소를 준 것이다. 나 대신 여러 번 아랍어로 통화한 가게 주인은 전화를 끊고 이곳에 카프탄을 두고 가도 된다고 했다. 나중에 K의 여동생이 와서 찾아가기로 했단다. 미안해하는 내게 아무 문제없고 걱정할 것 없다며 친절하게 웃는 그녀들이 천사로 보였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다정하지. 어제부터 바짝 긴장했던 다리가 풀릴 지경이었다.


겁 많고 이불 밖을 싫어하면서, 꼭 와줬으면 한다는 K의 한 마디에 여기까지 온 나. P답지 않게 10분 단위로 계획을 철저히 세웠지만, 모로코에 오는 동안 그 무엇도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몸에 맞지 않는 카프탄, 화장실 가기 불편한 카프탄, 주인을 찾는 것조차 어려운 카프탄. 하지만 덕분에 모로코 사람들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되었다.


마냥 고생스러운 하루라 생각했지만, 모로코 땅을 밟은 순간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줬던가. 뉴스에서는 연일 무서운 일들이 보도된다. 세상은 키도 작고 근육량 부족인 나에게 너무 위험한 곳이다. 초식동물로서 늘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겠지. 그래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순간 마주하는 무수히 다정한 장면들이 나를 낙관주의자로 만든다. 모로코는 꼭 다시 가보고 싶어. 전기장판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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